새해 첫날부터 전국적으로 '자치경찰'이 시행되었다. 자치경찰이 공식적으로 처음 거론 된 것은 1997년 12월19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첫 기자회견이었다. 그 후 역대정부에서 20여년간 논의되어 왔다. 김대중정부는 시_도의 자치경찰을 논의했다. 노무현정부에서는 2003년부터 시_군_자치구에 우선 지방자치경찰을 도입하기로 하고, 2006년 7월1일 제주도에서 시범실시를 시작했다. 전국의 시_군_자치구로 확산할 예정이었다. 15년 가까이 운영하면서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명박정부에서 갑자기 시_도의 자치경찰을 도입하는 방안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제주도에서 시범실시하고 있는 기초자치경찰 모델을 시_도에 도입하려 했다. 박근혜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정부는 초기에는 이명박정부 이래의 추진하던 모델과 유사한 방안을 법제화하려고 추진하다가 갑자기 2020년 8월에 청와대가 구상한 방안을 김영배 의원이 법률안으로 발의함으로써 기존의 논의와 시범실시의 결과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비판과 우려 속에 국회는 2020년 12월9일 약간의 수정을 거쳐 의결하였다. 당장 2021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게 했다. 한마디로 전혀 준비도 안되고 검증도 안된 졸속입법이다.

지금 시행하려고 하는 '자치경찰'에 관한 법률내용은 매우 복잡해서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현혹되기 쉽다. 쉽게 요약하면 시_도의 지방자치경찰사무를 국가경찰인 시_도경찰청장이 대신 수행하는 제도이다. 지방자치경찰사무에 관하여 7명으로 구성되는 시_도자치경찰위원회의 감독을 받지만, 그 위원회에는 국가경찰 추천인사가 일부 참여하고, 국가경찰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현행 '자치경찰'의 본질은 한마디로 국가경찰이 지방자치 사무를 위임사무로 수행하는데 있다.

지방자치란 자치사무를 주민의 공법상 결사체인 지방정부가 자기책임하에 수행하는 데 있다. 지방자치사무를 국가기관인 시_도경찰청장이 수행하는 것을 지방자치단체가 자기책임하에 수행한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지방자치의 원리에 근본적으로 반할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를 제대로 실시하는 어떤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가 없다. 지방자치에 관한 헌법상의 보장과도 합치되지 않는다.

지방이 할 수 있는 일을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보충성의 원칙에도 정면으로 충돌된다. 자칫하면 자치사무를 국가가 처리하고 비용은 지방이 부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방정부가 국가사무를 위임처리하는 경우는 있어도, 거꾸로 지방정부의 자치사무를 국가가 위임사무로 처리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법률에 자치경찰사무로 규정된 교통과 방범 등 생활안전, 경범죄와 학교폭력 등에 관한 수사는 다른 나라에서 우리의 읍_면에 해당하는 기초지방정부가 담당하는 자치사무이다. 예컨대 오스트리아 헌법 제118조은 지방자치경찰로 안전경찰, 행사경찰, 도로경찰, 시장경찰, 보건경찰, 미풍양속경찰, 건축경찰, 소방경찰, 경지보호경찰, 토지계획경찰을 규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기초지방정부의 평균 규모는 4200명 정도이다. 외국에서 시_읍_면 수준에서 자치사무로 수행하는 것을 우리는 시_도사무로 규정하고, 집행은 국가가 한다. 주민의 자치능력을 완전히 멸시하고, 주민을 무능력자로 취급하지 않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더 큰 혼란과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근본적인 손질을 해야 한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주민을 대표하여 지방사무를 의결하고 집행하는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침묵은 동조를 의미한다. 더구나 지방 단위에서 주민의 이익을 대변하라고 세금으로 운영하는 법률상의 공적기관인 전국시도지사협의회와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가 이런 경우 침묵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