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한꺼번에 무너진다.

무너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 한꺼번에 무너진다.

탑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불안하다.

당연히 무너져야 할 것이 가장 안정된 자세로 비바람에 千年을 견딘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르다 보면

이것만큼은 무너지지 않아야 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다.

아 어쩔 수 없는 무너짐 앞에

뚜렷한 명분으로 탑을 세우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맨 처음 탑을 세웠던 사람이 잊혀지듯

탑에 새긴 詩와 그림이 지워지고

언젠간 무너질 탑이 마침내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디에 탑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탑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불안하고

무너져선 안 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다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오늘 하루를 우리가 열심히 사는 이유는 지극히 명확하다. 그것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라지지 않는다면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필요는 없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모래성을 쌓아올리다 마침내 오늘날 100층 금자탑을 쌓았다. 이 탑도 언젠가는 무너져 내릴 테지만, 영원할 것처럼 견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맨 처음 탑을 세웠던 사람이 잊혀지듯/ 탑에 새긴 詩와 그림이 지워지고/ 언젠간 무너질 탑이 마침내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디에 탑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탑을 쌓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매일매일 밥을 먹고 사는 일에 왜 밥을 먹느냐고 묻지 않듯이, 무너질 탑을 왜 쌓느냐고 물어보는 일은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다. 탑이라는 것은 무너짐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절대적인 시간행위이기에, 거기에는 삶과 죽음을 통해 진화해온 인간의 근원적 존재가치가 내포돼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루하루 탑을 쌓아올리다 어느 종착역에서 한꺼번에 탑을 허물어뜨리며 적멸에 들어간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그 허물어지는 폐허의 길을 간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자리도 원래 누군가가 쌓아올렸던 무너진 탑의 자리였다. 지금 내 가족이 살아가는 이 집도 원래 누군가가 대를 이어 살아가던 잊혀진 어느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아, 그래서 나의 삶은 그토록 '불안'했구나. 죽어서는 안되는데 죽을까봐,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을까봐, 나는 오늘도 '불안'하다.

/권영준 시인•인천삼산고 국어교사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