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얼이 어려 있는 노래다. 백성들이 느끼는 삶의 애환을 그린 한국의 대표적 민요다. 한국인이라면 요람에서부터 아리랑을 배운다고 할 정도다. 세대를 거치면서 민중들의 공동 노력으로 창조한 결과물이 아리랑이다. 지역에 따라 다른 내용의 아리랑은 단순한 곡조와 사설 구조로 즉흥적인 편곡·모방을 할 수 있다. 함께 부르기도 쉽고, 다른 음악 장르에 자연스레 스며들기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리랑'이란 제목으로 전승되는 민요는 60여종 3천600여곡에 이른다. 아리랑이 지닌 특징은 표현의 자유·공감에 대한 존중이라고 한다. 그런 활동으로 지역·장르적 변주를 가능하게 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풍성하게 하는 듯하다. 영화·뮤지컬·드라마·춤·문학 등 여러 예술 장르와 매체에서 주제로 이용되는 아리랑은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거의 모두 아리랑을 알고 즐겨 부른다. 세계 어디에 가서 살든 한국인과 대한민국 사이를 잇는다. 마치 '문화의 탯줄'과도 같다. 이런 감정적 연결은 특히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에 이주해 한국인이 많이 거주해온 일본·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 국가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한민족의 심금을 울리는 아리랑은 우리 비공식적 '국가'(國歌)와 다름 없다. 1926년 제작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도 비슷한 맥락이다. 당시 민족적 저항의식을 작품 저변에 깔아 갈채를 받았고, 영화가 끝난 뒤 뒤 관객들은 목놓아 아리랑을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아리랑은 민족의 영원한 '주제'로서 살아 숨을 쉬며,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구심점 노릇을 한다.

“인천 제물포는 살기는 좋아도/왜인 위세에 못 살겠네/에구 데구 흥 성화로다 흥/단 둘이만 사자나 흥/산도 설고 물도 설고/누굴 바라고 여기 왔나∼” 세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천 아리랑'의 가사다. 인천 출신 국문학자 허경진 교수가 2000년 '인천 아리랑' 전문이 실린 <신찬 조선회화(新撰 朝鮮會話)>(1894년 8월27일 도쿄 간행, 홍석현 저)를 발굴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인에 대한 불만을 직접 표출하고, '사랑'을 소재로 한 다른 지역 아리랑과 다르다는 게 이채롭다. 인천 개항(1883년) 후 전국 팔도에서 품을 팔러 온 노동자들에게 여기저기 뽐내고 으스대는 일본인들은 정말 꼴보기 싫은 대상이었을 것이다. 당시 사회·시대상을 잘 반영한다.

이런 '인천 아리랑'의 생성 유래와 노래 가사의 의미를 분석한 연구가 최근 국립국악원 우수학술상을 수상해 눈길을 끈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서광일 대표가 이룬 성과물이다. 인천이란 근대 개항 공간에서 출발한 지역적 가치를 조명했다는 평을 듣는다. 아무튼 한국 노동운동의 시발점인 인천의 역사를 뒷받침하기도 하는 '인천 아리랑'에 대해 더 많은 조사·연구 등의 학술 활동이 필요할 듯싶다.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문일 논설위원 ymoon5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