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사실상 신년사로 대신한 노동당 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서에서 대미·대남 강경 발언을 통해 올해 전개될 고강도 정책을 재확인했다. 우선 미국을 향해서는 '강 대 강, 선 대 선' 메시지를 채택했다. 미국 대선 이후 변화된 정세 속에서 대북제재 완화 등 미국의 선제적인 변화 없이는 어떠한 양보도 없다는 것이다.

지난 트럼프 정부와 대화 기간에 유지했던 동결은 없고, 핵보유국 지위와 핵 무력 강화를 내세웠다. 게다가 핵잠수함 개발 계획을 공식화함으로써 한반도 주변에서 군사적 대결 구도와 긴장감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새로운 조미 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고 봤다.

선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미국이 강하게 나오면 초강경으로 맞서고 대화로 나오면 그에 맞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 8년 동안 유지했던 전략적 인내에서 역으로 북한식 전략적 인내로 대응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장기전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생각인 셈이다.

대남정책도 싸늘한 분위기다. “북남 관계의 현 실태는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통일의 꿈은 멀어졌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현재 남조선 당국은 방역 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 관광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북남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말하면서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한미 합동 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북측의 거듭된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위한 북남 합의 이행에 역행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출범이 남북관계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이 되겠지만 우리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북미관계와 완전히 별개로 할 수 없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려면 과거 트럼프 정부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바이든 정부를 설득해 나가면서 똑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빛바랜 평화경제나 교류협력 지원 등을 제안하는 것은 이미 북한에서 여러 경로로 거부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남북 간의 이행문제 즉,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등을 이행하기 위해서 바이든 정부의 임기 첫해부터 북한 문제를 외교 우선순위에 올리도록 설득해야 한다. 지난해 4월 총선 압승 후 민주당 일각에서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논의가 있었으나 실종된 이유가 우리부터 이행할 수 없기 때문에 봉합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번 당대회에서 조건을 달았듯이 올해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가 한반도 정세에 중대 변수가 될 것이며, 훈련 여부에 따라 북한이 대화에 나서는 자세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미연합훈련은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일 수밖에 없기에 북한은 그것을 빌미로 문 대통령이 제안한 '언제든, 어디서든 만나고, 비대면의 방식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와 바이든 정부 공히, 신년 국정과제 우선으로 삼고 있는 코로나 집중 대처의 일환으로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하거나 연기할 수 있다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명분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또 바이든 정부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북미대화 일지를 들여다본다고 했으니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과 하노이회담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해법이 나올 수 있다. 북한이 관계개선의 여지를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우리에게 던지면서도 태도 변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3년 전 봄날과 같이 온겨레의 염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에 다시 설 수 있다고도 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미국의 시선을 넘어 정말로 달라지지 않으면 현 정부로서는 이제 기회도 시간도 없다.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은 8000만 겨레의 마음과 뜻을 하나로 결집시킨 통일의 이정표이자 청사진이다. 우리부터 합의이행을 한다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신뢰가 회복될 것이다.

/신한용 신한물산(주) 대표이사_인하대 초빙교수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