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21대 국회가 '과잉 입법'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사회적 이슈로 떠 오른 사안에 대한 '보여주기식 입법'은 도가 지나치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1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21대 국회 의원발의 법안 건수는 6699건이나 된다. 하루 평균 약 30개의 법안이 발의된 셈이다. 겉으로만 보면 입법기관인 국회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발의된 6699건 중 최종 의결된 법안도 1043건이나 된다. 하루 평균 4.5개 법안을 처리한 셈이어서 나름 성과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최종 의결된 1043건 중 원안이 통과된 경우는 고작 58건으로 채 1%도 안되고, 일부 수정가결된 것을 포함해도 205건(3%)에 불과하다. 나머지 838건은 이른바 '대안반영 폐기'로 처리됐다.

이처럼 21대 국회 입법 성과의 겉과 속이 다른 이유는 부실 입법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이 발생하면 이른바 '000 방지법' 이라는 이름을 붙여 비슷비슷한 법안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결국 '취지만 대안에 반영하고 폐기'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 결과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조두순 못 막는 조두순방지법'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양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 '정인이 사건'이 발생하자 국회는 이른바 '정인이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47건을 발의만 해 놓고 관심조차 없다가, 최근 한 방송매체에서 재조명되면서 여론이 들끓자 하루 만에 심사를 마치고 이틀 뒤에 본회의를 열어 처리했다. 47건의 법안 중 7건은 법안 심사를 코앞에 둔 지난 1월5일 제출돼 이름만 올린 경우다.

여성과 아동 문제를 다뤄온 한 인권변호사는 “법 만드는 것이 장난도 아니고, 제발 정인이법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의원들이 쏟아내는 법안들이 오히려 법안 처리를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잉 입법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실한 입법은 법안을 제출했다가 스스로 취소한 '철회 법안'에서도 드러난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철회된 법안이 58건이다. 19대와 20대 국회의 4년간 철회 법안이 각각 172건, 215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났다. 철회 사유로는 사전에 이해관계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거나, 법안 발의 후 비판적인 여론이 일어 철회한 사례도 있다. 그만큼 법안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신이 발의한 법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도 있다. 심지어 원안이 전혀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올라왔는데 반대한 경우도 있다. 전자투표 과정의 실수라거나, 잠깐 자리를 비웠다는 등의 해명을 내놓고 있지만, 법안 의결이라는 중대성을 고려하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21대 국회가 제대로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각성과 함께 이제는 법안 발의 건수로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점도 지양해야 한다.

/이상우 정치2부 차장 jesus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