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가을 벼베기를 끝내고 젊은이들이 논에 나가 미꾸라지를 잡았다. 논의 물을 빼고 진흙탕에서 미꾸라지를 건지는데 아이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발자국은 놈들이 숨기에 알맞아서였다. 어른들만 대여섯이 한줄로 미꾸라지를 주으며 나아갔다. 그런 한편에선 살얼음 잡힌 웅덩이에서도 잡았다. 살을 에는 차가움에도 맨발로 어적어적 얼음을 밟으면서 물을 퍼내고 모래바닥이 드러날 즈음 대충 줍는데 돌틈의 맑은 샘물을 따라 꿈틀거리며 나오는 것들도 주웠다.
 이렇게 잡은 미꾸라지는 맑은 물에서 흙을 토하게 한 후 소금으로 비벼 닦아 큰 가마솥에 넣어 끓였다. 갖은 나물과 두부를 숭덩숭덩 썰어 넣어 끓이는 동안 머슴방에는 젊은이들이 언 몸을 녹이며 화투나 윷을 잡았다. 한데 막상 그릇마다 듬뿍 한상 들어올 때는 미리 마신 술로 곤드레 되기가 십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농촌이라도 이런 즐거움 맛보기가 쉽지 않다. 이미 미꾸라지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분별없는 농약 과용으로 죽은 벌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다른 물고기에 비해 생명력이 질기다는 미꾸라지조차 그런 형편이니 붕어도 메기도 피래미도 없다. 그러니 현재 추어탕집에 흔하게 보이는 놈들은 양식이거나 중국에서 수입해온 놈들이다.
 추어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언제부터 있었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시경에도 미꾸라지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이전일 것으로 추정한다. 추어탕은 인천도 유명했다. 신포시장 주변에서 고사리 호박고지 떡가래 등을 넣어 통째로 끓여 푸짐했는데 지금은 체인점으로 인해 지방마다의 특징이 없이 통일되어 있다.
 그런데 미꾸라지가 모기의 천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상고온으로 모기 유충의 밀도가 높아지자 안산시가 박멸을 위해 하천에 미꾸라지를 방류했다는 것이다. 학계의 연구로는 미꾸라지가 마리당 모기의 성충과 유충 등 하루 천마리 이상 잡아 먹는다고 한다. 근래 아파트들이 때아닌 모기떼로 괴롭힘을 당한다고 하니 모기도 잡고 추어탕도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