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세상의 모든 새끼들은 이쁘게 태어난다. 이는 동물뿐만 아니라 나무나 길섶의 잡풀조차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전 싸다녔던 해외여행길에서도 느꼈을 것이다. 피부색이나 인종_국적을 가리지 않고 어린 아이들은 왜들 그렇게 귀엽게 보인는지. 저도 몰래 쓰다듬어 주려다 '아차'하며 손길을 거둔 적도 있을 것이다.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들 얼굴이며 표정은 말할 것도 없다. 호랑이나 사자, 코끼리 새끼들도 마찬가지다. 막 떡잎이 돋아나는 무 배추 새싹들도 이쁘기 그지없다. 침이 삐쭉삐쭉한 엉겅퀴조차 아마도 새싹은 귀여울 것이다. 새상의 모든 새끼들이 이쁜 건 어린 생명들의 생존본능 때문이라고 한다.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려면 어른들의 보호본능을 끌어내야 해서다.

 

▶원숭이는 분만 후 2개월 동안은 단 한번도 새끼를 바닥에 내려놓는 일이 없다고 한다. 꼭 안거나 업고 다니고 똥오줌도 손이나 입으로 받아 처리한다. 새끼들이 스스로 어미 품을 비집고 나와야 비로소 그 고생에서 좀 풀려난다는 것이다. 가요 '단장의 미아리고개'에 나오는 '단장(斷腸)'은 1700여 년전 중국 진나라때 고사에서 유래한다. 진나라는 제갈량이 죽고 없는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배에 군사를 싣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협곡을 지날 무렵 한 병사가 벼랑 아래 덩굴에 매달려 장난치고 있는 새끼원숭이를 포획한다. 이를 본 어미원숭이는 큰 소리로 슬피 울며 강변을 내달려 수백리를 쫓아온다. 마침내 강기슭에 배가 닿자 새끼가 있는 배에 훌쩍 뛰어올랐으나 기진해 죽고 만다. 그 슬픈 울음소리를 잊을 수 없었던 병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았다. 새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거꾸로 어미가 새끼의 창자를 끊어 숨지게 하는 지경이 됐다.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불러일으킨 아동학대 사건이다. 지난 주 인천일보 시사만평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슬프도록 눈이 말똥말똥한 정인이가 우리들을 꾸중한다. '미안하다고? 뭐가…? 공범이면서? 잘못했다 해야지' 그런데도 금새 정인이를 떠올리게 하는 또 하나의 아동학대가 드러났다. 영하 19도로 35년만에 가장 추웠던 지난 주말 서울에서다. 내복만 입은 세살짜리 아이가 그 추운 거리를 울며 헤매다 지나던 시민에게 “도와주세요”라고 했다. 경찰이 그 집에 출동해 보니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부랴부랴 수십개의 정인이법이 발의됐다고 한다. 이미 5년 전에도 관련법이 만들어졌지만 학대받는 아이들은 갈수록 늘고있다. 법이 추상같이 무서워지면 우리 아이들이 온전히 지켜질까. 일그러지다 못해 파탄지경까지 간 이 시대의 심성과 인성의 문제다. 체념한 표정으로 숨졌다는 정인이가 그럴 것이다. 참으로 무정한 세상이었다고. 세상의 모든 새끼들은 다 이쁜 이유도 모르는가.

/정기환 논설실장 chung783@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