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WHO에서 '세계 대유행 바이러스 8가지'를 예견한 바 있는데 그 가운데 마지막으로 초래할 감염병을 '질병X'라 하였다. 이것이 코로나19가 아닐까 한다. 나는 올해부터 성당 사목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하여 그 활동에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같은 소규모 활동뿐만 아니 지구상 온 인류가 신체적 활동의 축소 및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 사목회에서 '듣보잡'이라고 자칭한다. 코로나 이전 평상시에는 내가 봉사활동에 열심이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나의 단순한 정서적 안정을 위하여 아침 6시 미사를 다니다가 우연히 신부님 눈에 띄어 청소년부회장으로 봉사하게 되었다. 남들에 비해 그 봉사의 밑천과 경험이 일천하여 나 스스로 듣보잡이라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인류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전대미문의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산업혁명 이후 약 200년간 선진국에서 사회·정치·경제·문화의 발전단계에서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치 않고 약 50여년의 짧은 세월을 통해 선진국의 대열에 당당히 합류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1위의 자살률이라는 멍에를 등에 짊어지고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촉발된 부의 과도한 불균형과 소수집단의 점유, 그로부터 소외된 계층의 박탈감과 기득권 세력에 대한 무기력한 반감은 극도에 달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 이후 10년 이상이나 앞당겨진 언택사회의 도래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었던 다양한 사회적인 병폐를 제대로 치유하기도 전에 우리 사회를 쓰나미처럼 덮치고 말았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국민적 졸부 근성도 무시못하는 상태로 치닫고 있다. 내가 의미하는 심각한 사회적 병폐라는 것은 주지하다시피 사람간의 정서적 유대관계가 매우 심각할 정도로 단절되고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성세대와는 달리 소위 MZ세대의 정서적 고립감과 불안감도 코로나로 인해 그 정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것을 교육 일선에서 경험하고 있다. 노인빈곤에 의한 자살률이 선진국 대비 10배라는 지표를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기성세대의 아픔으로 새겨지고 있다.

최근 코로나에 대한 성공적인 대처로 K방역이 국제적 부러움을 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방탄소년단의 세계적 인기로 K문화의 국제적인 유행도 목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특히 교육현장에서 MZ세대가 정서적 괴리, 불안감,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역지사지로 상대방의 마음과 사정을 헤아리는 데에도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들이 성장과정에서 집안형편에 따라 자가용을 타고 학교나 학원을 오갔던 경험과 가정에서도 대학 진학을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방적인 프로그램에 매몰되어 사람간의 정서적 마찰, 갈등, 충돌 등의 해소과정에서 축적될 수 있는 타자와의 나눔, 공유, 인내, 배려에 대한 이해의 경험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부족하였다.

또한 학창시절에 따돌림문화의 일반화로 겪은 트라우마의 벽에 갇힌 청소년기의 방황과 성인이 되더라도 이것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못하여 건강한 사회활동과 삶의 질이 크게 훼손되는 것을 주위에서 흔히 보고 있다 . 가정에서의 대화 부재, 학교생활에서의 무한경쟁, 최근 예기치 않은 코로나 발생으로 인한 4차산업의 급속한 도래는 사람간의 신뢰관계 형성에 더 큰 어려움을 촉발하고 있다.

특히 MZ세대 내에서의 충돌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성장과정에서 개인 또는 집단간 갈등 발생 시 합리적으로 해결해본 경험이 부족하여 결국 그들의 건강한 정서적 성장이 저해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것이라고 보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결국 청소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건강하게 흡수되어 각자의 역량과 능력을 한껏 발휘하여 사회와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무언가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시스템의 구축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와 같은 움직임은 결국 코로나 종식 후 우리 사회 다양한 계층에서 걱정하고 있는 MZ세대의 일상 복귀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사소한 것이 많은 것을 의미하지 않지만 때론 전부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듣보잡(호모코비드19ㄷㅂㅈ:homocovid19dbz)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단순한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김창균 인하대 환경공학과 교수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