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우주관 통박하고 지구·지전설 설파
▲ <역학이십사도총해易學二十四圖總解>,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김석문은 우리나라 최초로 지전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역학적 우주관을 재구성하려 하였다. 아래 그림은 <역학이십사도총해> 24장 중, '제이황극구천도'이다.

전 회에 이어 '호락논쟁'을 좀 더 설명한다. '인물성이론'을 주장한 호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은 '인물성동'을 주장하는 낙학파 논리에 대해 인간과 금수의 구분이 없어진다는 '인수무분'(人獸無分), 유교와 불교의 구분이 없어진다는 '유석무분'(儒釋無分),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이 없어진다는 '화이무분'(華夷無分) 논리라고 비판하였다. 이 논쟁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정조 임금도 '이론적으로는 인물성동 논리가 타당해 보인다'고 한마디 거들었다가는 '현실적으로는 인간과 금수의 구분이 사라진다니 께름칙하지 않느냐'며 떨떠름해하기도 하였다.

물론 선생이 여기서 말하는 인물은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은 귀하고 사물은 천하다는 귀천의 문제였지만 사물과 인간이 서로의 존엄성과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임은 분명하다. 즉 본연지성(本然之性)은 인간과 사물이 똑같이 갖추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인간이 사물을, 사물이 인간을 상대적이고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호락논쟁'은 저렇고, 이제 허자와 실옹은 사람과 사물의 근본 문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시절, 이 글을 쓰는 나와 독자는 1초에 463m, 시속 1667㎞로 자전하고, 평균 29.76㎞의 속도로 공전하는 지구에 산다는 것을 안다. 18세기 저 시절, 선생은 이 자전과 공전을 정확히 이해하였다.

 

사람과 사물의 근본은 무엇일까?

허자: 천원지방

실옹: 온갖 사물의 형체가 다 둥글고 모난 게 없는데 하물며 땅이랴! 달이 해를 가릴 때는 일식이 되는데 가려진 체(體)가 반드시 둥근 것은 달의 체가 둥글기 때문이며, 땅이 해를 가릴 때 월식이 되는데 가려진 체가 또한 둥근 것은 땅의 체가 둥글기 때문이다. 그러니 월식은 땅의 거울이다. 월식을 보고도 땅이 둥근 줄을 모른다면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면서도 그 얼굴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태허(太虛,우주의 본체인 허공)는 본디 고요하고 비었으며, 가득히 차 있는 것은 기(氣)다. 안도 없고 바깥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데, 쌓인 기가 일렁거리고 엉켜 모여서 형체를 이루며 허공에 두루 퍼져서 돌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니 곧 땅과 달과 해와 별이 이것이다. 대저 땅이란 그 바탕이 물과 흙이며, 그 모양은 둥근데 공계(空界)에 떠서 쉬지 않고 돈다. 온갖 물(物)은 그 겉에 의지하여 사는 것이다.

선생은 전통적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다)과 천동지정(天動地靜, 하늘은 움직이고 땅은 가만히 있다)에 대한 통박을 한다. 선생은 유추와 비유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견해를 편다. 세상 모든 물체가 둥글지 않은 게 없기 때문에 지구도 둥글다는 것이다. 또한 일식과 월식이라는 천문 현상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유추해낸다. 달을 해가 가리는 일식이 나타나면 달이 둥글기 때문에 해를 가린 형상도 둥글다. 땅이 해를 가리는 월식이 나타날 때도 해를 가린 형상이 둥글다. 일식 현상에서 달이 둥글기 때문에 둥근 형상으로 반사되는 것처럼 해를 가린 형상이 둥근 이유는 달처럼 땅도 둥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식을 통해 월식 현상을 유추하고, 땅이 둥글다는 사실까지 나아갔다. 선생은 월식이 땅을 거울에 비추어본 현상이라 비유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명한지 강조하고 있다.

 

무거운 땅덩이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

허자: 기(氣)로써 타고 싣기 때문입니다.…새 깃이나 짐승 털처럼 가벼운 것도 모두 밑으로 떨어집니다.

실옹: 땅과 해와 달과 별의 상하가 없는 것은 네 몸에 동서남북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이 땅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누구나 괴이하게 여기면서 해·달·별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대저 해와 달과 별은 하늘로 올라가도 오르는 게 아니며 땅으로 내려와도 내려오는 게 아니라 허공에 달리어 항상 머물러 있다.…대저 땅덩이는 하루 동안에 한 바퀴를 도는데, 땅 둘레는 9만 리이고 하루는 12시(時)다. 9만 리 넓은 둘레를 12시간에 도니 번개나 포탄보다도 더 빠른 셈이다. 땅이 이미 빨리 돌매 하늘 기(氣)와 격하게 부딪치며 허공에서 쌓이고 땅에서 모이게 되니, 이리하여 상하 세력이 있게 되는데 이게 지면(地面) 세력이다. 땅에서 멀면 이런 세력이 없다. 또는 자석은 무쇠를 당기고 호박(琥珀)은 지푸라기를 끌어당기게 되니 근본이 같은 것끼리 서로 작용함은 물(物)의 이치다. 이러므로 불꽃이 위로 올라가는 것은 해에 근원을 두었기 때문이요, 조수가 위로 솟는 것은 달에 근원을 두었기 때문이며, 온갖 물(物)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땅에 근원을 두었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은 지면의 상하만 보고 망령되이 하늘의 정해진 세력을 짐작하면서 땅 둘레에 모이는 기(氣)는 살피지 않으니 또한 좁은 소견이 아니냐?

바로 지전설(地轉說, 지동설)을 말하는 부분이다. 당시에는 수학, 천문학, 의학 등은 말기(末技)였다. 그러나 선생은 “어찌 말기라 이르리오”라며 “정신의 극치”라고까지 하였다. 선생은 아예 집안에 '농수각'(籠水閣)이라는 별실을 지어 혼천의(渾天儀)와 자명종(自鳴鐘)을 연구하였다. 북경에 가서도 흠천감(欽天監, 국립천문대)에 근무하는 유송령(劉松齡, Augustinus von Halberstein)과 포우관(鮑友官, Antonius Gogeisl) 두 독일인을 만나 질문하기도 하였다. 지전설에 대한 견해는 일찍이 김석문(金錫文, 1658~1735)이 <역학이십사도총해>에서 주장했으나 선생의 견해가 좀 더 과학적·논리적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