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상서. 그동안 옥체 무강하시지요. 저도 덕분에 잘 있습니다.…” “친구야 그간 별고 없지. 네 소식이 무척 궁금해 펜을 들었다.…” 이런 편지 내용은 이젠 거의 사라졌다. 서로 안부를 묻거나 소식을 알려고 하는 등 직접 적어 보내는 손편지는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 편지나 엽서 등을 부치려고 우체통 앞을 서성거렸던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인터넷 발달로 이메일이 주를 이루는 세상에, 애틋하고 정겨운 손편지는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그렇게 편지와 공문서 등을 주고받던 '근대 우편업무'가 인천에선 언제 시작됐을까. 1883년 일제에 의한 강제 개항 이듬해부터였다고 하니, 참으로 오래 됐다. 물론 일본인들이 본국과 통신을 하려는 수단 중 하나로 설립한 우편국이 '원조'로 통한다. 당시 우편국을 이용하던 이들은 거의 모두 일본인이었다. 사실상 일제가 우편업무를 좌지우지했다는 얘기다. 우리 조정은 그래서 1895년 일본 우체국과는 별도로 조선인을 위한 인천·서울우체사(郵遞司)를 세우기에 이른다. 그 무렵 전국 400여 곳에 임시우체소를 두었으나, 1905년 한일 통신협정으로 인해 우체사는 일제 우편국에 흡수·폐지됐다. 결국 국민들은 해방 전까지 일본인 운영 우편제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1884년 지금의 인천시 중구청 자리 인근에 우편국을 두었다가, 우편 수요가 급증하자 1923년 '인천우편국'을 지어 이전했다. 결국 식민지 침탈을 위한 우편업무를 전담했다. 인천우편국은 출입구 양쪽에 큰 돌기둥을 세우고, 거친 화강암을 기단으로 쌓았다. 서양 르네상스와 일본식 건축 양식을 섞었다. 일본인 우편 송달 업무가 대부분이었던 인천우편국은 광복 이후인 1949년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인천우체국'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은 몇 안되는 개항 관련 건물로 유명하다. 이래저래 인천은 근대 우편제도에서도 그 역사성을 기릴 만하다.

1982년 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인천우체국은 2003년 연수구 신청사로 이전한 뒤 2년간 수리를 거쳐 중동우체국으로 쓰였다. 중·동구를 관할하는 중동우체국이 2019년 신흥동 정석빌딩으로 옮겨지면서 옛 인천우체국 건물은 비워졌다. 앞서 건물 안전진단에선 결함으로 보수가 필요한 단계인 'D등급'을 받았다. 건물 앞엔 '구조 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표지판도 세웠다. 100여년 역사를 담은 인천우체국 건물이 우편 업무를 종료한 지 1년7개월이 넘도록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우정사업본부와 우체국 매입 협의를 진행하는 인천시는 기존 건물 일부 공간에 '우정박물관' 조성 방안을 마련했지만, 우체국 대체 부지를 놓고 경인지방우정청과 아직 줄다리기 중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2월 옛 인천우체국 매각 의사를 시에 밝히면서, 상응 조건으로 중동우체국 청사를 새로 지을 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양쪽이 잘 조율해 역사를 품은 도시 인천의 근현대 건축물 보전에 힘을 쏟았으면 한다.

/이문일 논설위원 ymoon5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