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불화에 잇단 동반자살도
'내가 낳은 목숨 내맘대로' 경향
인식변화·안전망 구축 필요성
▲ 수원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이 발생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진은 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가족 조형물.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4일 오후 7시15분쯤 수원시의 한 아파트 거실에서 A(43·여)씨와 두 딸(13세·5세), A씨의 어머니 B(65)씨가 흉기에 찔려 쓰러져 있는 것을 남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B(65)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지만 위중한 상태다. A씨와 두 딸은 모두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A씨가 B씨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두 딸도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서는 가정불화로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A씨와 B씨의 유서가 각각 발견됐다. 경찰은 유서를 남긴 점,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점 등에 미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2019년 5월5일 시흥시의 한 농로에서 어린 자녀 2명을 포함한 C씨의 일가족 4명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C씨가 빚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다가 자녀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도내에서 가정불화나 경제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자녀의 목숨까지 함께 앗아가는 안타까운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녀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가 이런 행위를 엄연한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5일 통계청의 도내 범죄 발생 및 검거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폭행과 살해 등 존속범죄는 703건으로, 한 달 평균 58건 이상 발생했다. 2018년 549건보다 28%나 늘어난 수준이다. 같은 시기 15명이 가족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가족 간 범죄 중 부모가 자녀를 살해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범죄의 유형은 다양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00~2019년 조사 발간한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가족살인범죄'를 보면 존속범죄 과정에서 자녀가 피해자인 경우 범행동기는 생활고가 47.5%로 가장 많았다. 금전문제(28.8%), 자신의 처지 비관(11.9%) 순이었다.

전문가는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홀로 남겨진 자녀가 살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그릇된 애정도 한몫한다면서 인식변화와 사회안전망 확충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녀 목숨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비극이 악순환된다”며 “아무리 부모라도 자녀의 목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도 없는 생각을 명확하게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녀를 살해한 후 자살한 행위는 엄연한 범죄고 동정받을 수가 없다는 인식이 사회에 퍼져야 한다”며 “무엇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부모가 한 차례 더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도록 맘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 등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