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국산에 설치된 소의 형상.

“호환마마보다 무섭다.” 예전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때 앞부분에 나오던 공익캠페인의 일부다. 호환마마는 두창이라 불리는 천연두로 옛날에 가장 혹독한 역병이었다. 낫더라도 얼굴에 이른바 '곰보' 자국이 생기는 전염병이었다. 조선 말, 영친왕도 천연두를 앓다 회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19세기 전반기 영국인 의사 제너가 소를 이용한 우두법을 개발했고 우리나라에서는 1894년 이후 종두법을 시행하였다. 종두(種痘)는 '천연두(痘)를 심는다(種)'는 뜻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백신을 맞는 것이다. 백신(vaccine)은 '소(牛)'를 뜻하는 라틴어 vacca에서 유래됐다. 한때 우리는 백신을 '왁진'이라고도 불렀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천연두 예방과 치료를 위해 두묘판매규칙(1921년) 조선종두령(1923년) 등을 제정했다. 이에 앞서 인천 송림동에는 조선은 물론 동양에서도 유일한 두묘제조소를 설치했다. 두묘(痘苗)란 두창에 걸린 소에서 뽑아낸 천연두 백신의 원료로서 '우두약'이라고도 했다. 이 두묘제조소는 1908년 일본국립전염병연구소 인천출장소로 개칭되어 두묘 생산기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해방 후 이 자리에는 동명초등학교가 이전해 왔다.

송림산(수도국산) 기슭에서 두묘를 추출한 소들을 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의 바람과 이슬 그리고 풀을 먹고 자란 한우에서 일본 소에서는 결코 빼낼 수 없는 양질의 우두약을 추출했다. 인천 소 한 마리에서 5만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두묘를 제조했다. 한 해 350만명 가량이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일본은 물론 중국, 미국까지 수출해 수많은 사람을 구했다.

이 땅의 숙명인가. 한 세기 후 인천 송도에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세계적 바이오 기업들이 들어섰다. 각종 백신과 치료제, 항체 의약품 등을 개발, 생산하며 'K바이오 메카'로 자리잡았다. 우직한 인천 소들의 발걸음이 또 다시 인류를 구할 날이 머지않았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