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트로트 광풍 속에 지난달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TV 트로트 방송 좀 자제하고 장르별로 보여 달라'는 글이 올라 눈길을 끌고 있다. 자신을 무명 트로트 가수라고 밝힌 청원자는 “처음에는 트로트가 활성화되어 좋았지만, 그 뒤 무명가수 수십만명이 다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청원자는 “방송국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고, 음악 장르가 트로트밖에 없는 것처럼 시청률에 목을 매고 있다. 이제는 좀 자제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또 “공정성 있는 방송을 해 달라”고 강조하며 “미성년자의 트로트 오디션 참가에도 제한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동요를 부를 나이에 유행가를 부르게 하고, 그걸 보며 좋다고 박수치는 어른들도 각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고 하니까 트로트 방송만 나오는 거다.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 “트로트라는 장르보다는 어린애 끼고 몰려 나와서 항상 같은 패턴으로 노는 게 지겹다”는 등의 의견을 보였다. 어른들이 겨루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어린이들을 꼭 참여시켜야 했을까.

힘든 인생살이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회한과 상처를 나름의 곡조로 만든 것이 트로트다. 굴곡진 삶의 가사가 들어 있는 구슬픈 노랫말을 체험하지도 않았을 텐데도 열 살 전후의 어린이들이 어찌 저리 잘 표현해서 청중과 심사위원의 눈물을 흘리게 하며 부를 수 있는지 감동마저 느낀다. 그럼에도 인생의 애환과 희망을 부르는 트로트의 그 애절함과 기교, 가사를 과연 저 어린이들이 이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앞서 안타깝다. 어린이들의 재롱에 감흥과 정서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손민원(성_인권 강사)은 “우리는 아동이 만들어낸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과 동시에 아동이 생산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 방법 모두가 진정 아동을 존중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또한 이것을 시청하는 수많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력으로 작용할지도 같이 알아봐야 한다. 어른의 과도한 욕심이 앞서서 재미를 위해 좀 더 자극적으로 생산되고 있지 않은지, 그리고 어른의 관점이 적용되는 생산 시스템에서 아동의 노동은 안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또 노동자이기 이전에 아동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진 학습권, 쉴 권리에 대한 보장은 잘되고 있는지도 같이 봐야 한다” 라고 강조했다.

10년 전만 해도 어린이들이 트로트를 흉내 낸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어린이들이 유행가를 부르면 어른들이 먼저 혼을 냈던 것이 요즘은 조기교육, 영재교육, 진로 직업교육이 강조되다 보니 부모들은 어린 나이부터 아이들의 재능을 찾아 주려고 TV에 내보내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변성기를 지난 중학교, 고등학생 정도나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 어린이들이 더 이상 동요를 부르지 않는 이유는 동요를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어린이를 장시간 유치원이나 돌봄교실에 맡기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TV와 접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만화영화 주제곡이나 가요를 반복적으로 듣게 됨으로써 동요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또한 조기교육의 일환으로 영어가 중요시됨에 따라 영어노래나 영어에 대한 DVD만 시청함으로써 동요는 다시 한번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어린이들이 트로트나 대중가요를 부르면서 인기를 한몸에 받자 부모들이 어린이들에게 동요보다 트로트나 가요를 부를 것을 요구하게 됐다. 걷기 전에 뛰기부터 하려면 당연히 넘어지게 된다. 어린이들은 시기에 맞는 발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때문에 시청자의 나이 제한이 있듯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격을 생각해 참가자의 나이 제한도 고려해야 한다.

동요란, 어린이의 생활이나 심리 등을 표현한 시, 혹은 어린이를 위하여 만들어지는 노래를 말한다. 동요의 바탕에는 단순_보편성 및 이상과 몽환(夢幻)이 담긴 낭만주의적 요소와 함께 윤리성_교육성으로 집약되는 인도주의적 요소가 있다. 우리의 동요는 역사성과 민족성이 깃들어 있고 철학적 예술성이 풍부하다. 이는 겨레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려는 목적으로 동요를 창작해 왔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운 발상과 표현으로 그들의 생활과 상상력의 세계를 어린이다운 가락에 얹어 그들다운 창법으로 불러야 한다. 어린이가 동요를 부르지 않고 어른 흉내를 내게 되면 동요를 잃게 된다. 어린이가 동요를 잃으면 그 나라의 미래도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한다. 어린이에게 동요를 돌려주자.

/기원서 전 송도중학교 교장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