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수익중심 재난취약 민간병원 '국내 94%'
⑵올해 공공병원 신축 예산은 '0원'
⑶병상확보 구속력·공공의대 법안 '계류'
▲ 안수경 국립중앙의료원 지부장이 지난해 12월23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에서 열린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의료인력 소진·이탈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의료 확충은 해묵은 주제다. 매번 필요성을 공감하지만 정작 정책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오히려 관련 예산은 해마다 삭감돼 논란이 됐다.

지난해 코로나19 발병으로 공공의료 체계 개편 요구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들끓었다. 특히 병상 확충 문제가 다시 불거졌음에도 이를 생각지 않고 증축 설계 예산만을 책정해 '생색내기'에만 그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뒤늦게 정부는 필수의료 지원을 위한 공공의료체계 강화에 나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관련 법안이 해를 넘긴 탓이다.

 

#종합병원급 공공의료기관 마련해야

우리나라는 의료보험 도입 이후 공공병원보다는 민간병원을 중심으로 의료 수요를 감당해왔다.

국내 공공의료기관은 지난해 12월 기준 221개로 전체 의료기관(4034개)의 5.7%이며, 공공병상 수도 6만여 개로 전체 병상 수의 10% 수준이다. 같은 사회보험 방식을 채택한 일본(27.2%), 독일(40.7%), 프랑스(61.5%)의 공공병상 비율과 비교하면 한참 낮다.

우리나라 1000명당 병상은 12.3개(2017년 기준)로 경제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에 이어 두번째다. 하지만 공공병상은 1.3개로 OECD 회원국 평균 3.0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최하위권이다.

결국 민간을 중심으로 의료 공급이 이뤄지다 보니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과잉 및 과소 진료 문제가 나타나며, 국가적인 재난·재해 상황에서의 안전망도 취약한 구조다. 특히 정부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병상이 적은 탓에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환자가 대량 발생하면 효과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고 병상 부족에 시달린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12월18일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과 전략' 보고서를 통해 민간 의료체계를 주도할 수 있는 공공병원 확충을 제안했다. 진료권별로 최소 300병상 이상인 종합병원급 공공병원을 짓자는 이야기다. 이는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인구 고령화로 인한 비수도권·농촌 지역의 의료 격차 심화도 공공의료 확대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통계청은 국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2017년 전체 인구의 13.8%에서 2047년 38.4%로 가파르게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고령화가 심화할수록 중간 규모의 민간병원은 수익을 내는 것이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해당 지역의 의료 시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건보공단은 “공공병원을 설립하는 데 드는 비용은 300~500개 병상당 약 2000억원으로 추산했다”며 “이는 고속도로 4~7㎞를 설치하는 비용 정도로 설립 이후 발생하는 편익에 비해 투자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도 지난해 11월 논평에서 “정부는 수개월의 시간이 있었지만 병상확보에 계속해서 실패해왔다. 징발 수준의 강제력 없이 돈벌이가 제1목적인 민간병원에 손 벌려 병상을 확보하는 방법이 쉽게 성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공공병상 비율이 10%도 안 되는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병상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거듭거듭 입증됐다”고 밝혔다.

 

#공공의료 확충 예산 사실상 '0원'

올해 공공의료 확충 예산은 사실상 '0원'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3일 발표한 예산 내용에 따르면 지방의료원의 시설정비 현대화(증축, 시설보강) 및 감염병 대응 등 기능 특성화, 적십자병원 기능 보강을 위해 지난해보다 168억원이 증가한 1433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하지만 공공병원 신축 예산은 책정되지 않았다. 공공병원 증축을 위한 설계 예산 15억원뿐이다.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노동시민단체는 같은날 성명을 통해 예산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부와 여당이 얄팍한 눈속임으로 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생각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시민들은 대전, 광주, 울산 등 대도시임에도 공공병원이 없는 지자체를 포함해 17개 시도에 최소 2개씩 공공병원을 신축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신·증축과 매입, 공공화를 통해 향후 5년간 약 4만 병상을 늘려야 한다”며 “여기에 드는 예산은 연간 2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내년도 '슈퍼예산'이라고 하는 558조 예산의 극히 일부이다. 그런데 정부는 15억원을 생색내기로 내밀면서 '감염병 등 보건위기 대응 역량과 공공의료 강화' 예산이 증액됐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것도 당장 증축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 '설계' 예산이기에 정부 임기 내 증축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 공공의료체계 강화 나서

잇따른 비판에 정부는 지난해 12월13일 '감염병 효과적 대응 및 지역 필수의료 지원을 위한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을 내놨다.

우선 400병상 이상의 지방의료원을 2025년까지 20개 내외로 확충하고 병상을 5000병상까지 늘린다. 또 2022년까지 11개 내외 지방의료원 증축하고, 1700병상을 확충한다. 2025년까지 기존 지방의료원 6개를 이전 신축하고, 3개 이상의 지방의료원을 신축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3500병상 내외의 병상을 확보한다. 또 진료권 내 적정 공공병원이 없는 등 확충 필요성이 높고, 구체적 사업계획이 수립된 경우에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지방의료원 확충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한다. 지방의료원 신·증축에 대한 국고 지원도 현행(50%)보다 10%p 높인다.

지역 완결적 의료여건 조성을 위한 지역 책임병원도 지정한다. 전국을 인구 15만명당 70개 진료권으로 나눠 2025년까지 96개의 지역 책임병원을 확충한다. 이를 통해 지역민이 수도권 대형병원을 가지 않아도 지역에서 진료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군 의료기관·특수병원 등의 협조체계 논의를 위해 공공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도 공공보건의료위원회'를 구성해 중앙-지방간 거버넌스도 강화한다.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은 “앞으로 감염병 등 공중보건위기가 상시화되는 시기에 대비해 중환자 치료가 가능한 감염병 병상 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진료권별로 진료역량과 공공성을 갖춘 거점병원이 확보돼 의료 형평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대책에도 현장에서는 실효성 없는 대책 목소리

정부가 병상·인력 확보 등과 관련된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증환자가 늘면서 간호 인력의 업무가 폭증했다. 또 기존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의 치료를 담당하던 의료 인력의 임금과 파견 의료 인력의 임금 격차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한 전담병원에서 일하는 기존 간호사의 월 수령액은 257만8000원이지만, 민간의료인 모집 인건비에 기초한 파견 간호사의 한 달 근무 기준 수령액은 총 930만원(23일 근무수당+위험수당+전문직 수당 기준, 숙소지원·야간근무수당 미포함)에 이른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12월23일 ▲환자 중증도별·질환 군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 ▲치매·정신질환·외상 환자 등 별도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에 대한 추가적인 인력운영대책 마련 ▲보조인력 및 방역인력 지원 확대 ▲파견인력 사전교육훈련 실시 ▲코로나19 기간 동안 공공의료기관 인력 한시적 확대 및 인건비 지원 ▲기존 인력과 파견인력 간 위험수당 격차로 인한 박탈감 문제 해소 ▲코로나19 환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충분하고 신속한 손실보상 조치 ▲공공병원 전담병원 전환에 따른 의료취약계층 의료공백 발생하지 않도록 전원 가능한 지정병원 마련 등을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감염병 진료체계가 붕괴하지 않도록 시급히 보건의료인력을 중심으로 감염병 진료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라며 “코로나19 환자 상태별 적정인력 기준을 만들면서 공공병원의 정원을 확충하고, 파견인력 교육·훈련 방안을 마련하는 등 인력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병상수·인원수 꿰맞추기로는 안 된다”라며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의료 인력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파악해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의료 인력 대란과 진료체계 붕괴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해 넘긴 의료법안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핵심 과제는 여전히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감염병 전문병원 설치 문제가 대표적이다. 앞서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박근혜 정부는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중앙감염병 전문병원'과 '권역별 전문치료병원'을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국립중앙의료원·조선대 병원이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지정됐지만 부지 문제 등으로 설립 작업이 순탄치 않다.

또 지난해 6월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수도권·중부권·영남권·호남권·제주권 5개 권역별로 감염병 전문병원을 지정하는 내용의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감염병 병상확보에 구속력을 부과하자는 취지였지만 논의는 첫발도 떼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해당 법안에 대해 “신종 감염병 대응 시 5개 권역 이외 추가 권역이 필요할 경우 탄력적·즉각적인 대응이 어렵다”고 부정적 의견을 냈다.

공공의대 설립 법안도 '일시 멈춤'이다. 김성주 민주당 의원이 6월 발의한 '국립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은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감염병 대응능력을 갖춘 공공의료 인력도 확보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법안에 반발한 의료계가 집단휴진에 돌입하면서 결국 민주당과 대한의사협회는 공공의대 설립 법안을 “원점에서 재논의한다”고 합의했다.

복지위 관계자는 “의·정 협의체를 통해 복지부와 의사협회가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직 공공의대 설립, 의료 인력 확충 등을 어떻게 할지는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