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물결을 타고 다시 새해가 밝았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소띠 해 중에서도 '흰 소띠'의 해라고 한다. 예로부터 흰 소의 해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물씬 일어나는 해라고 한다. 새해 벽두에 서서 올 한해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비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의 마음들은 여느 해와 같지는 않을 듯 하다.

미증유의 돌림병이 우리네 일상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전쟁을 겪었던 세대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처음으로 부딪히게 된 참으로 힘든 2020년이었다.

본보 2020년 송년호 지면의 헤드라인 기사에는 지난 한해 평범한 소시민들이 겪었던 역병의 시대가 소상히 기록됐다. 그들 사연들을 반추하노라면 저마다 자기들 앞가림에 바빠 미쳐 헤아릴 겨를도 없었던 이웃들의 아픈 일상이 절절히 전해져 온다. 코로나19는 뒤처진 약자들을 먼저 덮쳤다. 용인과 성남, 평택지역 오일장을 돌면서 장사를 하던 사람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한 해를 돌아봤다. 그는 지난해 3월과 8월, 그리고 11월부터 연말까지 아무 일도 못하고 집에만 박혀 있었다고 했다. “자영업자들도 힘들다고는 하지만, 시간을 줄이거나 포장을 하게 하거나 했지만 오일장은 그냥 금지됐다. 억울하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엔 프리랜서도 지원금을 받게 됐는데, 사업자 등록이 안됐다는 이유로 모든 지원에서 빠지는 오일장 상인에게도 누가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수원에서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가던 한 노인은 점점 살기 어려워져 가는 우리 사회가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는 “폐지를 줍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질 줄 몰랐다." 그간 거의 홀로 수원일대를 돌며 폐지를 주워왔는데, 지금은 곳곳에 폐지를 줍는 사람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그만큼 살기가 어려워진 사람들이 늘어난 때문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코로나 이전만 해도 하루에 폐지와 철 등을 손수레에 두번 가득 담았지만 지금은 많아야 한 번을 채우는 정도라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출동이 잦고 힘이 들었던 119 구급대원의 일상에서도 코로나19에 멱살이 잡힌 지난 한 해가 그려진다. 구급대원은 현장으로 나갈 때마다 역병으로 고통을 받고있는 시민들의 참상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현장활동때 마다 방호복을 겹겹이 입어야 해 시야가 좁아지고 코로나19 지원으로 출동인력이 부족해 쉴 틈이 없는 나날이었지만, 그나마 어려운 시기에 어려움에 빠진 시민들을 도울 수 있어 그나마 행복했다고도 했다.

또 있다. 우리를 대신해 비명이 터져나올만큼 고군분투했던 의료진들이다. 코로나19 확진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들은 번아웃(탈진) 상태로까지 몰렸다. 급기야 경기도의료원 산하 병원들의 간호사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요양간병인을 필요로 하는 확진 환자들은 급증하는 데도 방역조치상 일반인 출입이 제한돼 간호의료진들의 업무가 폭증한 탓이다. 그래서 끝이 보이지 않는 업무 과부하에 숨쉬기조차 힘들다는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한다.

다시 새해를 맞으면서 먼저 우리 스스로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간다는 지도층들은 맡은 바 직분에 과연 얼마나 성실히 임했는가를 뼈저리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미증유의 역병 사태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당리당략의 욕망을 추구하지는 않았는가. 오일장 행상이나 폐지 줍는 할머니 등 도탄에 빠진 민초들의 삶을 헤아릴 생각이라도 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19의 방역을 두고서도 전문가들의 판단과 권고는 뒷전에 두고 정치적 이해타산과 근거없는 자만에 휘둘리지는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백척간두에 선 시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채 자기들만의 목소리로 세상을 더 소란스럽게 했을 뿐이다. 판결이 맘에 들지않는다고 해서 재판부를 공격한다면 그 다음에 닥칠 사태는 과연 무엇이겠는가.

새해에는 우선 그 모질고 거친 말부터 삼가도록 하자. 우리 모두가 삼가는 마음 가짐으로 처음의 맡은 바 직분으로 되돌아가자. 그래서 남 탓을 할 시간에 스스로 맡은 직분에 충실하자. 그래야 새해에는 우리 민초들이 그리도 염원하는 '그리운 일상으로 다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미증유의 역병 시대는 우리에게 겸허함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