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눈다운 눈이 내린 며칠 전 속초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살짝 눈 덮인 설악산의 모습은 오직 진실이었다. 웅장한 숲과 화려한 단풍으로 눈에 익었던 설악산이 올곧이 있는 그대로 속살을 보여주고 있었다. 칼날 같은 준령의 날카로운 모습이나 구불구불한 능선과 계곡이 흰 눈에 대비되어 세밀하게 다가왔다.

사람 사는 세상을 코로나가 발가벗기고 있다. 민주화되고 풍요를 누리는 선진국에서조차 가려져 있던 불평등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코로나가 소득과 생활방식의 격차를 드러나게 한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인도의 계급제도인 '카스트'에 빗대어 '코로나 카스트화'라고 일갈했다.

코로나카스트의 첫째 계급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원격근로자 계층을 지칭했다. 소득 변화가 없고 축적된 재산으로 자신들만의 격리 생활을 즐길 수 있어 감염위험도가 낮다. 둘째는 경찰_의료진_소방관 등 현장을 지켜야하는 필수근로 계층이다. 실직 위험이 없어 소득 변화는 없으나 감염위험이 크다. 셋째는 무급휴직이나 실직된 무임금근로자 계층이다. 소득이 감소하여 생계를 위해 감염위험을 살필 겨를이 없다. 넷째는 시설에서 집단 생활하는 잊혀진 계층이다. 이전소득에 의존해 살아가며 집단감염 위험이 높다. 셋째와 넷째 계층을 방치할 경우 사회 안전망 붕괴가 우려된다.

미국의 경우 흑인 1인당 소득은 2만4700달러로 백인 4만2700달러의 58%수준이고, 흑인 1가구당 재산은 6000달러로 백인가구 10만2000달러의 6% 수준에 불과해 격차가 크다. 흑인 중에는 코로나 감염을 확인하고도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들이 있다. 그 결과 흑인 코로나 사망률이 백인보다 2.6배 높았다. 영국도 흑인 남성 코로나 사망률이 백인 남성에 비해 4.2배 높고, 흑인 여성의 경우도 백인 여성에 비해 4.3배 높다고 밝혔다(영 통계청 ONS). 선진 복지국가조차 빈곤과 불평등의 대물림 구조가 굳어진 결과다.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국제적 담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는 “코로나 위기가 보건 분야 공공투자의 정당성을 강화했다”고 언급하며 불평등 해소 대안으로 부유층과세를 제안했다(영 가디언지 5월12일). 국제통화기금(IMF)는 경제보호기금 조성 방안으로 소득, 부동산에 대한 '연대특별세'를 제안했다.

우리나라도 계층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3분기 가계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저소득가구의 가계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한 데 비해, 고소득가구는 2.9% 증가했다. 특히 소득하위 20% 계층의 근로소득은 10.7%나 감소했다. 라이시 교수가 언급한 제3_4계급이 증가된 영향이다.

거리두기, 비대면, 코로나 방역대책으로 영업이나 활동이 금지_제한되는 업종 종사자, 자영업종사자, 문화예술 공연인, 관광여행업, 숙박업, 영세사업장 등의 근로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제3_4계급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배달 임시직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코로나 감염위험과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고 있다.

불운하게 이 어려운 때에 사회로 진출하는 청년들에 대해 더 한층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일자리_주택·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의 끈을 주어야 한다. 부동산 영끌, 주식시장의 개미로 몰려 삶을 허송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유연성 있고 민첩하게 운영하여 복지사각을 없애야 한다. 일자리가 최고의 안전망이다. 국민 취업지원을 방역과 같은 수준의 국가 목적으로 삼고 총력을 기울려야 한다. 한국판 뉴딜도 좋고 중장기적인 불평등 해소도 좋다. 그러나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계층들이 당장의 생계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

하루 신규 확진자 1000명을 오르내리는 3차 유행으로 거리두기는 더 강화됐다. 모두가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국민_국가 모두 합심하여 방역에 나서고 있고, 백신 확보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코로나의 긴 터널도 끝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 서민 계층은 끝이 더 아프다. 불평등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서정규 인천시설공단 이사회 의장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