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섰다. 2020년 벽두가 바로 어제 같은데…. 아니 벌써 새해를 앞두고 있으니, 역시 세월은 놓아버린 화살과 같다. 쏜 살처럼 지나가는 시간 앞에 시쳇말로 장사는 없다. 광대한 우주 속에서 한낱 미미한 존재일 수도 있는 인간의 유한함을 다시 읽는다. 그러할진대 무얼 그리 잘났다고 나대며 천방지축 헤맸을까. 살아가면서 겸손함을 익혀 '하늘의 도'를 알았으면, 허방다리에 빠져 허우적거리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인지상정인지라, 옷깃을 여미는 연말연시를 맞아 회한의 넋두리에 빠지게 된다.

모두가 삶의 모퉁이를 돌고돌아 예까지 오느라 얼마나 애를 썼으랴. 때론 성처를 받고 이를 어루만지느라 애면글면하고, 누구는 오랜 가뭄 끝 단비를 만난듯 희희낙락하며, 어떤 땐 무엇을 탓하면서 실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어디 이뿐만이겠는가. 온갖 잡동사니 같은 일에 부대끼며 하루 하루 버티며 지내온다. 하여 세상만사가 뜻대론 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아로새긴다.

가는 해는 어차피 붙잡지 못한다. 그냥 속절 없이 지나갈 터이다. 그 무상함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누구나 이즈음엔 아쉬움을 남긴 채 지는 해를 바라본다. 오가는 세월이야 어찌할 도리 없지만, 지나간 1년을 반추하고 반성하는 일 또한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마음가짐을 다시 꾸려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로써 경건하고 겸허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거두절미하고 2020년은 만인에게 끔직한 해로 기억될 수밖에 없으리라. 코로나19란 녀석 때문이다.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한바탕 난리를 치는 중이고, 그 공포는 당분간 계속 우리 주위를 맴돌 게 분명하다. 인류 역사상 전혀 낯선 전염병 탓에 국가·개인경제를 위태롭게 하며,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도 끊게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벌려놓는 무서운 놈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마저 팽개치게 한다는 점에서 아주 고약하다. 부모·형제·친척·친지 등도 멀리 하라고 하니, 답답한 심정 그지없다.

요즘 사람들 사이엔 “그저 코로나가 발붙이지 않게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일이 일상화됐다고 한다. 연말모임은 고사하고 5인 이상 회합을 금지하는 판국이니, 헛웃음만 나온다. 나라에선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가까이 하자”라고 해도, 통할지 모르겠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오죽하면 여북하랴. 언제쯤 코로나가 종식될 지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상황이다.

아무튼 1년을 마감하는 자리다. 팬데믹이 더는 우리를 괴롭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내년 이 무렵엔 코로나는 사라지고 연말연시를 기리는 모임으로 가득찼으면 한다.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 노자 도덕경 47장에 나오는 말이다.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세상만사를 아는 혜안을 갖출 수 있다고 한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데면데면 지내도, 나중을 생각해 이 구절을 음미하면서 견뎠으면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 ymoon5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