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서울 마포에서 지은지 4개월된 아파트가 통채로 무너져 내렸다. 33명이 사망한 와우아파트 붕괴다. 초가집이나 판잣집에 살던 서민들도 아파트를 알게 된 사건이었다. 1977년에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이 터졌다. 처음으로 P가 붙은 강남의 고급 아파트였다.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언론인, 연예인들까지 연루된 흥미진진한 아파트 스캔들이었다. 한국의 유별난 아파트 문화가 앞으로 어느 쪽으로 치달을지를 미리 보여준 사건이랄까.

▶삼성, 현대아파트라 하던 이름들이 언제부턴가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레이크 뷰' 같은 영어와 숫자, 한글 지명이 뒤범벅 돼 홈페이지 패스워드보다 복잡하다. 시어머니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했다는 설에 수긍이 간다. 야간 경관조명도 갈수록 현란하다. 처음엔 '무슨 러브호텔이냐' 했지만 이제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지하철역 설치 등 대부분의 주민 민원도 파들어 가면 아파트 값에 닿아 있다. 요즘은 수시로 도색도 새로 한다. 새단장한 아파트를 보면 쇼윈도우에 내놓은 매물처럼 보인다. 이런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파트 주거문화를 흉보는 이들도 있다. 아침이면 꼭대기층부터 1층까지 수직으로 나란히 앉아 볼 일을 보는 풍경이 뭐냐는 거다. 갈수록 사람들 심성이 피폐해지는 것도 아파트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할 인간이 공중에 붕 떠 있으니 마음이 잡히겠냐는 거다.

▶온갖 아파트 문제로 유난히 시끄러웠던 한 해였다. 기상천외한 수십가지 대책에도 아파트 값은 경칩날 개구리처럼 뛰어 올랐다. 이젠 강남이 무색할 지경이다.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던 예언이 실현되는 셈인가. 그렇다면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라는 명언도 언젠가 이뤄질 수도 있겠다. 아파트 권력들의 싸가지 없는 갑질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급기야 인천의 어느 아파트에서는 입주자대표가 여성 관리소장을 살해하기까지 했다. 아파트 관리비 통장은 입주자 대표와 관리소장의 공동명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입주자 대표는 자기 단독 명의로 바꾸곤 해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재판 과정에서는 입주자 대표의 월 활동비를 더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입주민들만 봉이었던 셈이다. 안전이 장점인데도 아파트 화재도 빈발했다. 이달 초 군포 아파트 화재때는 남의 집에 난 불임에도 다른 입주민들까지 희생됐다. 택배차 출입을 막아 택배노동자들을 더 지치게 한 아파트들도 여전했다.

▶얼마 전 안산의 한 아파트에서는 좀 더 희한한 갑질까지 있었다. 한 동대표가 초소 근무 경비원을 불러낸다. 초소 옆 개똥 무더기와 나란히 서게 한 후 사진을 찍는다. 개똥도 안치우고 뭐하느냐는 의미였던 모양이다. 이 사진을 입주민 카페 등에 올릴 셈이었을까. 동대표 해임에 나섰다지만 오래 기억될 아파트다.

/정기환 논설실장 chung783@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