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AI) 위기경보단계가 '심각' 수준으로 상향되면서 닭과 오리, 메추리 등 가금류에 대한 가차 없는 살처분이 지속되고 있다. 여주, 김포, 화성 등 벌써 경기도에서만도 311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이런 추세라면 전국 어느 곳에서도 살처분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남·북과 충남·북, 경북 등도 이미 쑥대밭이 됐다. 거세게 밀어닥친 감염 여파는 안타깝게도 화성시 산안마을에까지 밀어닥쳤다. 인근 3㎞ 반경 안에서 AI가 발생하면서 예비적 살처분을 요구하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이를 거부하는 공동체의 갈등이 심화하는 모양새다.

산안마을이 어떤 곳인가. 야마기시즘 실현지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곳의 생태적 삶은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뜻있는 관광객들이 몰려올 정도로 이름이 높다. 특히 이곳의 닭 사육방식은 흔히 보는 공장형 축산방식과 아주 거리가 멀다. 햇볕과 공기, 흙과 먹이에 더해 동물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이곳의 가축사육방식은 동물복지의 표준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곳에서 생산한 유정란은 생협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인기품목이다.

2014년에도, 2017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됐지만 결국 산안마을에서는 감염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무조건 살처분만이 능사는 아니다. 산안마을 닭들은 과연 이번에도 감염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인지, 두고볼만한 가치가 있다. 피해갈 수 있다면 생태적 사육방식이 주는 매우 훌륭한 교훈이 될 것이요, 피해가지 못한다면 이 또한 공장형 가축사육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물론 산안마을 사례가 아니더라도 밀집형 사육방식에 대한 전면적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가금류의 조류독감은 국내에서 처음 발생했던 2003년 이후 매년 반복되는 고질병으로 이미 정착했다. 한때 백신으로 예방이 되는 듯 보이기도 했으나 그 또한 답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살처분도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렵다. 매년 반복하는 살처분 방식은 주로 매몰이다. 인간과 함께 공존해야 할 뭇 생명들을 언제까지 계속 파묻어야 하겠는가. 인간에게 누가 그런 권리를 부여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