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공원묘지 한편에

노송 한 그루 문패처럼 서 있다

그가 거느리는 무덤 몇몇 그리고 나는 저절로 우리가 된다

잘 아는 사이처럼 마음 속 인사를 하고

옛 일을 회상하고 서로의 삶을 어루만져 준다

사방은 온통 무덤뿐 나는 가만히 한 동네의 어귀를 돌 듯

이 무덤 저 무덤 눈이 부시게 바라본다

여기 이렇게 오손도손 모여 살고 있었네?

문득 어느 외로운 영혼에 대해 진지해진다

널따란 묘지 그 앞마당이며 빛나는 대리석들

빽빽한 외로움이 되고 그물이 되고

너무 높은 담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내 죽어 이사할 때는

이런 마을 이런 동네에 묻어달라 편지해야지

서로 살면서 홀로 살았던 수십 년

쉽게 쉽게 손 잡는 법 배울 수 있다면

누구라도 쉽게 내 손 잡아 준다면 내 죽어 이사해서는

여기 이 마을 이 동네의 영혼처럼 한사람 티끌 되어 머물러 있겠다.

▶요코하마를 여행할 때 일이다. 항구의 동네에는 외인묘지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무덤과 집이 하나가 되어 살고 있었다. 뿌리도 모를 외인묘지의 수많은 비석들은 바로 내 집의 정원수였다. 무덤을 곁에 두고 베란다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가족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어느 집에서는 주부가 창밖 대리석에 눈을 맞추며 빨래를 널고 있었고, 어느 집에서는 노인이 묘지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등교하는 아이들은 비석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얼굴에 미소가 환히 피어올랐다.

우리 사회가 무덤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음은 매우 씁쓸한 일이다. 거주지 베란다 아래 타인의 무덤이 조망된다는 건 매우 불쾌한 일로 취급되기도 하며, 어설픈 풍수를 맹신해 시빗거리가 되기도 한다. 공적 화장장 하나를 짓는 일에도 수만의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시위를 해 결사적으로 막아내니, 한국의 무덤은 함께 공존하기 어려운 타자임이 분명한 듯하다.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다. 매우 철학적인 이 화두는 인간을 언제나 순수한 정신으로 인도하는 주술이 되어 왔다.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우리를 매우 숨 막히는 삶으로 이끌어 왔음도 부인할 수 없다. 무덤을 썼다는 것은 그곳이 좋은 땅이란 것이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 무덤이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며, 누구나 종국에는 스스로 멀리 했던 저 유택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로 살면서 홀로 살았던 수십 년' 동안 저렇게 '오손도손' 모여 살고 있는 영혼들을 헤아리는 이 시의 화자처럼.

나는 얼마를 더 살아야 '한사람 무릎 아래서' 영혼의 편지를 쓸 수 있을까? 무덤 곁에서 식사를 하고 빨래를 널고 책을 읽는 일…… 생각할수록 나는 멀었다. 옆집의 장례조차 알지 못하는데, '죽어 이사'할 일을 어찌 알 수 있을 것인가.

/권영준 시인·인천삼산고 국어교사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