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배다리'란 이름은 인천인들에게 야릇한 향수를 자극한다. 배가 지나다니는 풍경은 보지 못했어도, 뭔가 친근감을 자아내는 지명이어서다. 인천 개항(1883년) 이전 작은 배들이 수로를 통해 철교 밑으로 드나들어 배다리란 명칭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까진 거의 모든 시내버스가 배다리와 동인천을 오갔다. 배다리 옆엔 그 무렵 인천에서 비교적 큰 중앙시장이 있어 시민들의 발길을 끌었다. 그러지 않아도 배다리 일대의 경우 개항 후 일본인들에게 밀려 떠돌던 조선인들이 정착해 일궜다고 해서 더 정감을 불러일으켰던 터였다.

배다리 철교 아래 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헌책방 거리'(동구 금곡로)가 반긴다. 숱한 사연이 묻어 있는 곳이다. 인천을 고향으로 둔 50대 이상이라면, 한번쯤 배다리 헌책방을 찾아 누렇게 바랜 책갈피를 넘기며 책을 골랐던 기억을 갖고 있으리라. 헌 책에선 이전 책 주인들의 흔적과 함께 특유의 묵은 종이 냄새가 난다. 헌 책이라고 해서 지저분하거나 헤져 있지 않다. 책방에서 잘 관리해 마치 새 책처럼 내놓기 때문이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한국전쟁 후 하나둘 모인 이동식 리어카 책방에서 시작됐다. 서울 청계천·부산 보수동과 함께 '전국 3대 헌책방 거리'로 불렸다. 한때 40곳에 달할 만큼 흥청거렸다가 1980년대 이후엔 침체기에 빠졌다. 지금은 아벨서점과 한미서점 등 5개 정도만 남아 명맥을 유지한다. 이들 헌책방에선 국문학 고서부터 미술·음악·한방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적을 판매한다. 이 거리를 거닐다 보면, 지나간 시절 배움에 목말라 했던 이들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듯하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인천시민뿐만 아니라 멀리서 방문객들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헌책방 거리 인근엔 국내 최초 성냥공장(1917년) 모습 등을 보여주는 '배다리 성냥마을 박물관'도 있어 눈길을 끈다. 성냥의 역사와 제조 과정, 생활 변천상을 알려주는 자료 2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밖에 역사를 간직한 인천 첫 공립보통학교 창영초교와 서구식 신식교육의 선구지 영화학교 본관동 등이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힌다. 아무튼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민족사적 애환을 품고 있는 '배다리 마을'은 인천의 역사와 함께한 서민들의 삶터임에 틀림 없다.

인천시교육청이 '동네 책방 활성화'에 나섰다. 학교 밖 교육을 담당하는 마을교육공동체 거점으로서 동네 책방의 잠재적 가치를 높게 판단해 이를 적극 지원하고 교육에 활용하기로 했다. 이 중엔 '배다리 책문화거리 조성사업'이 포함된다. 동구 지역 학교와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연계해 책 축제를 벌이고, 독서 관련 마을교육공동체가 참여하는 행사 등을 여는 게 사업의 뼈대다. 이렇게 인천의 대표적 원도심인 배다리 일대를 교육의 한 방편으로 삼는 일은 고무적이다. 헌책방 거리를 잘 살려 인천의 역사·문화·예술의 향기가 넘쳐나는 곳으로 만들면 어떨까.

/이문일 논설위원 ymoon5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