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정이 화두가 되고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원제 능력주의의 폭정)에서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능력주의는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며 능력에 따라 성과를 배분한다는 것이지만, 공평한 기회 제공과 능력 발휘의 보장이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며, 이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통제하기란 점차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능력주의는 더 많은 평등에 대한 약속이라기보다는 심화되어 가는 불평등 구조를 인정하고, 불평등 구조를 능력에 따라 재구축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계층이동성에 대한 약속일뿐이라고 한다. 문제는 사회적 계층이동성이 불가능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능력주의가 갈수록 성공한 사람에게는 오만을 갖게 만들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패배주의를 안은 채 살아가게 만든다고 한다.

더 나아가 성공한 사람들은 온전히 자신의 노력만으로 성공했다고 오판해 패배자를 깔봐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며, 이로 인해 사회적 결속력과 연대감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를 역행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러한 능력주의 폭정속 포퓰리즘을 이용해 트럼프는 백악관에 입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공정이란 공평하고 정의로움을 의미해 왔고, 현재 역시 변함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 효율성, 노력 대비 성과 등 교육을 포함한 모든 사회 영역에서 경제적 평가기준과 원리를 적용하게 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려하지 않은 과정 상의 절차적_형식적 공정만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기회가 균등하지 못한데, 과정과 절차만 공정하면 결과가 정의로워질까? 새얼문화재단이 발행하는 <황해문화> 2020 겨울호에서 김정희원 교수는 공정성이 언젠가부터 기득권의 무기가 되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득권을 지키려고, 기득권을 더 확장하기 위하여,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하다 생각하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일부 집단을 위한 공정성이 아니라, 전체와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위한,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한 공정성이어야 한다. 전국민을 능력에 따라 서열화하고, 1등만이 최고로 여겨지며,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풍요로워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현재 자살률 세계 최고, 출산률 최저라는 불명예 사회를 살고 있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풍요중독사회>에서 우리는 소득_빈부 등 격차가 극심한 사회를 살고 있고, 이러한 격차는 불평등을 초래하고, 불평등은 다시 사회적_개인적 불화를 낳으며, 이러한 불화는 불안을 조장한다고 한다.

불안에는 생존불안과 존중불안이 있는데, 생존 및 존중 불안이 극도에 달하게 되면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출산 포기와 자살이라고 한다.

불안을 자신의 미래 세대에 승계하고 싶지 않아 출산을 포기하고, 불안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어 가슴 아프게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한다. 생존불안과 존중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개인적 능력에 따른 각자도생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 존중을 기본으로 한 관계의 복원과 연대가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우리는 우리 모두와 우리 미래를 위한 공정을 추구해야 한다. 인천시 인권위원회와 공정경제위원회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윤대기 변호사·인천시 인권위원장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