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서울에서.

대구에 사는 친구 둘이 케이티엑스를 타고 서울에 오는 날이 있다. 나처럼 서울에 사는 친구가 있어 우리 둘은 마중을 나가기로 해서 그날 넷이 함께 오전 11시에 서울역에서 만난다. 6개월에 한 번쯤 만나기에 반갑기 그지없어 서로들 얼굴을 보자마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우선 음식점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고 나서 서울 구경을 하는 게 이날 스케줄이다. 저녁 때 두 사람은 대구에 돌아가야 해서 마음이 바쁘다.

작년 어느 봄날 넷이서 남산 케이블카를 타 보았다. 너무 오랜만에 타는 거라서 그런지 처음 타는 것처럼 발아래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감탄하였다. 한편으론 케이블카가 공중에서 고장이라도 나서 멈춰 버릴까 봐 무섭기도 했다.

작년 어느 가을날 한강 유람선을 타 보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보기만 했던 유람선을 실제로 타 보니, 마치 소풍을 온 학생처럼 마음이 들떠 배가 출발하자 나도 모르게 "어머 어머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왜 그동안 이런 걸 타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이 났다.

또 언젠가는 과천 대공원에 가서 동물원 구경을 했고, 큰 호수 위 높은 곳에서 리프트를 탈 때는 넷 다 고소 공포증이라도 생겼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몸자세를 고치면 호수에 빠질 것만 같아 얼마나 긴장한 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지 리프트에서 내릴 땐 안도의 한숨이 다 나왔다. 모두들 입을 모아 리프트를 타고 있는 동안 밑으로 추락해 물속에 빠지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다는 솔직한 고백에 우린 웃음보가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내가 대구에 사는 친구들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 준다고만 여겼다. 서울에 사는 친구와 내가 대구 친구들이 고마워할 일을 해 주었다고만 여겼다. 최근에야 깨달았다. 그 친구들 덕분에 내가 서울 구경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음을. 

서울에 살다 보면 서울을 구경하러 다니게 되지 않는다. 애들이 어릴 땐 애들을 데리고 다니는 재미로 남편과 여기저기 다니기도 했지만 애들이 크고 나니 그런 외출을 하게 되지 않았다. 또 서울 친구들끼리만 만나면 한곳에서 만나 점심을 사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질 뿐이어서 어디 구경을 다니지 않는다.

“대구 친구들아, 너희들이 서울에 오지 않았으면 내가 서울 구경을 다닐 기회가 없단다. 내가 20여 년 만에 케이블카도 타고 20여 년 만에 유람선도 타고 즐거웠던 것은 다 너희들 덕분이야. 그러니 내가 너희들에게 베푼 게 아니라 너희가 나에게 베푼 거야. 먼 서울까지 와 줘서 정말 고마워.”

깨달음은 늦을 때가 많다. 그래도 늦게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자신만 상대에게 베풀었다는 생각은 인간관계에서 심각한 해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최근 또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작년에 우리 넷이 만날 땐 코로나19가 출현하기 전이라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친구들과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녔던 그 행복이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이 지금처럼 절실히 가슴에 와 닿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글·사진=피은경 시민기자 pek050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