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시간이 멈춘 채 계절만 바뀐 세상을 살고 있다. 관객을 대면해야 하는 공연단체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와중에 그나마 숨통을 터준 촉매가 있었다. 인터넷을 활용한 전달 방식이다.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발간하는 문화예술 정보지 『아트인천』에서 윤성주 예술감독이 구성·연출한 인천시립무용단 제85회 정기공연 <정재정감(呈才情感)>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인천시립무용단은 “오천 년 우리 역사 속에 전해온 공연예술의 정점에 있는 '궁중정재'를 현대적 시각으로 조명해 온라인 콘텐츠로 재생산했다”라고 소개했다. 궁중정재는 궁에서 연희나 의식 때 추었던 가악무 일체의 궁중 예술로 왕실의 공덕을 칭송하고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예술이다.

우선 생소한 단어, 정재(呈才)가 궁금했다. 정(呈)은 '윗사람에게 바치다.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렇다면 정재란 '재능을 윗사람에게 보인다' 또는 '재예(才藝)를 관객에게 보인다'는 뜻이리라.

첫 번째 무대는 다섯 명의 처용무가 두 송이 연꽃 앞에서 나비 날개처럼 한삼(하얀 긴소매)을 나풀거리는 '학연화처용무합설'이다. 사뿐사뿐 걷는 발걸음은 새색시의 수줍음보다 더 조심스럽다. 이어 두 마리의 학이 등장해 고혹한 자태로 날갯짓을 한다. 잠시 후 긴 부리로 연꽃을 가르니 원색의 화려한 의상을 걸친 아리따운 두 여인이 환생해 학과 처용무, 무용수들과 태평성대를 몸짓으로 노래한다.

임금의 장수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무산향'은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로 침상 모양의 작은 무대인 대모반에서 추는 독무이다. <정재정감> 포스터의 주인공인, 빨간 저고리를 걸친 무용수의 어깨에 걸친 장식이 아름다움과 위엄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궁중검무'는 시대에 따라 검기무, 첨수무, 공막무로 불리며 궁중 내 잔치 때 무희의 양손에 쥔 검기를 휘두르면서 추는 춤이다. 8명의 무사 복장 여인의 양 손끝에서 허공을 넘나드는 칼은 섬뜩한 무기라기보다 장고 채 같은 유연함을 느꼈다.

'춘앵전'은 조선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모친의 탄신 4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전하며, 이른 봄날 아침에 나뭇가지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자태를 무용화한 향악정재이다.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색의 앵삼을 입고, 화관을 쓰고, 오색 한삼을 양 팔목에 끼고 화문석 위에서 추는 독무이다. 꾀꼬리 한 마리가 하늘하늘 수양버들 가지를 넘나드는 뒷배경 화면이 인상적이다.

'선유락'에서도 도입부에 “연그음이라아~ 대취타아~ 하랍신다”라는 무사의 타령조 명령이 흘러나온다. 여령(女伶)들이 화려하게 채색된 배(彩船)를 끌고 나와 집사의 호령에 따라 닻줄을 끌면서, 배를 겹으로 둘러서서 춤춘다. 이때 대형 무대가 좌로 우로 회전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무대 말미에 사또 복장을 한 무사가 객석을 향해 칼을 이마에 올리는 예를 마친 후 “연그움~ 철하~ 하라”라고 외친다. 이어 출연했던 무용수들이 모두 나오고 처용무를 추었던 남자 무용수도 가면을 벗고 허리를 숙인다. 순간, 입추의 여지 없이 객석을 메웠던 관객들이 기립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함성이 한동안 내 귓전을 울리고 있었다.

/김사연 인천문인협회장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