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2010년에 세상을 떠난 리영희 교수가 1994년에 출판한 평론집의 제목이다. 그는 “8·15 광복 이후 근 반세기 동안 이 나라는 오른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는 위대한 착각 속에 살아왔다”면서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각종 폐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맹목적인 반공과 냉전수구적인 흑백논리의 사고가 전사회적으로 만연하게 되었고, 1987년 민주화 전후 시기까지 권위주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는 사람이면 야당 정치인이든 학생이든 가리지 않고 빨갱이로 낙인찍어 고문하거나 심지어는 죽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우익의 행태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 리교수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우익세력들이 이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 대선 패배와 낮은 여론지지율에 놀란 자유한국당 등 우익정치세력은 '새는 좌우의 날개가 균형점이 맞아야 오래 날 수 있다. 정치도 좌파와 우파가 균형되어야 한다. 너무 좌파로 기울어진 나라는 미래가 없다'면서 우익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였다. 그런데도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완패를 맛봐야 했다. 이때부터 자유한국당의 대부분 중진정치인들도 이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5년 광복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배제와 억압을 당했던 '좌익'세력의 전유물이었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표현을, 좌익을 배제하고 억압함으로서 권력과 부를 독점했던 우익이 인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이대로 가면 우익정치세력의 존속 자체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일 것이다.

우익의 위기 배경에 우익은 광복 이후 반세기 동안 자유민주주의는 물론 법치와 인권조차 외면하면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무조건 '빨갱이'로 낙인찍어 모질게 탄압했다는 국민들의 집단기억이 있다. 실제로 우익정치세력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은 '붉은 색'으로 덧칠하여 탄압하고 일반국민들은 물질적 혜택과 오락성 문화로 정치적 비판의식을 무디게 만들어 권력을 잡고 행사해왔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민주주의 원칙과 권리의식에 투철해서 무슨 정책을 추진하든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지금에 비하면 너무나 쉬운 지배방식이었다. 물론 이 방식은 지금 이 시대에는 결코 받아들여질 수도 없고 통하지도 않는다.

이전의 좌익은 반공을 내세운 권위주의 독재세력의 가혹한 탄압 때문에 약해졌지만, 지금의 우익은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배척당했기 때문에 약해진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우익 중에서도 대표주자격인 국민의 힘은 아직도 (진짜 사회주의자가 보면 사회주의자는커녕 사회민주주의자로도 보지 않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과 행동을 주사파, 사회주의, 친북, 간첩 등 색깔론을 동원하여 비판하고 대중을 선동하여 동원하는 것 이외 새로운, 제대로 된 우익정당의 모습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좌익' 출신 책사를 영입하고 극우세력과 거리를 두기도 하고 전 대통령들의 잘못을 사과하기도 하는 등 당 쇄신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도 우익의 지지율은 높아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부여당이 실책을 난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은 제대로 된 정책과 전략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인데도, 국민의 힘은 오히려 반공권위주의 독재정치로 회귀하려는 극우세력과 다시 손잡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 되어서는 결코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우익이 제대로 서야 좌익도 제대로 한다. 그래야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국민도 행복해질 수 있는 지혜와 정책이 나온다. 2000년 16대 총선부터 2020년 21대 총선까지 우익정당의 국회의석수는 100석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조직이 망가지는 중이라 해도 지역개발예산만 확보하면 당선되기 때문에 당의 쇄신을 위한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당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한, 우익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영태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