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어는 민족의 얼이자 문화 창조 원동력”

1977년 사범대 졸업 후 국어교사로 교단 서
학생 흥미 끌 교수법 연구에 매진하다보니
한글 연구 뒷전으로 밀리는데 아쉬움 느껴

아이들 가르치며 자료 수집해 책으로 엮어
1998년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로 시작
올해 <아름다운 순우리말 공부>까지 펴내
<우리말 형태소 사전>, 최우수학술도서에

“정겹고 맛깔스러운 고유어 빛 잃어가 애석
책 통해 모르는 낱말 익혀 편하게 활용하길”
▲ 우리말 연구가 백문식 국어학자가 순우리말 사전을 들고 출근길에 나서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혼이에요.”

국어와 함께 한평생을 살아온 백문식 국어학자는 우리말 연구가 우리 민족의 혼을 지키는 것이라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언어로 인정받는 한글을 제대로 쓰고 말하는 것부터가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 말에는 우리 민족의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전 세계의 많은 언어가 다른 언어를 모방해서 만들어졌지만, 한글은 독창적이면서도 높은 과학성을 담고 있어 현대 세계적인 언어학자들도 가장 우수한 문자로 인정합니다. 특히 한글에는 한민족의 혼이 담겨 있고, 그렇기에 일제강점기에 우리 선조들이 우리글을 지키는 독립운동을 하기도 한 것입니다.”

 

▲국어 선생님으로 느낀 갈증 푼 '우리말 사전 만들기'

그는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국어 선생님으로 1977년 첫 교단에 섰다. 그의 첫 바람은 흥미를 잃은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교수법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교사의 길이 어린아이를 바르게 성장시킬 커다란 기회라고 생각하고 사범대학에 입학했고, 국어교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 교사는 대학교수들이 연구해 놓은 결과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면 끝나는 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떻게 가르쳐야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배울 수 있을지, 주어진 자료지만 나름대로 학생 수준에 맞게 가공하고 전달하는 연구를 했었어요.”

그러나 '교수법'을 연구하던 그에게 한글 그 자체의 연구는 항상 아쉬움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어 연구 수준은 변변치 않았어요. 사전도 다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한번은 중국의 어학 대학에서 외국어 관련 도서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어요. 중국어는 한쪽 벽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고, 일본어도 독일어도 아주 크고 많고 다양한 도서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어는 고작 책장 하나에 20~30여 권의 책이 전부였죠. 거기서 충격을 받고 국어를 연구한 성과물을 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때부터 부사와 파생어, 형태사 등등의 사전을 펴내기 시작했어요.”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자료를 수집해 한글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책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1998년 한글 낱말의 어원을 담은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를 시작으로 2004년 <우리말 파생어 사전>, 2005년 <우리말 표준발음 연습>, 2006년 <우리말 부사 사전>, 2012년 <우리말 형태소 사전>, 2014년 <우리말 어원 사전> 등을 줄줄이 집필했다.

<우리말 형태소 사전>과 <우리말 부사 사전>은 각각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학술도서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사전을 편찬한 이유는 우리말이 시대의 변화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서 세대가 바뀌면 변화하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원칙과 법이 없다면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고, 풍부하고 다양한 어휘가 사라지기도 해요. 예를 들어 '너무'라는 말은 문법적으로만 보면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지만, 요즘에는 좋다는 의미나 싫다는 의미에서나 모두 쓰이고 있어요. 그러면서 '상당히', '꽤', '매우', '아주' 등 다양한 어휘는 쓰이지 않고 있어요. 또 외래어도 마찬가지예요. 이 때문에 사전을 만들게 됐어요. 우리말을 정확히 알아야만 시대의 변화에도 우리말을 지켜갈 수 있어요.”

그의 연구영역은 한글 자체에만 머물지 않고 한글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로도 커졌다. 2013년에는 국민이 꼭 알아야 하지만, 쓰인 말이 어려워 해석하기 힘든 헌법을 쉬운 말로 풀어낸 <알기 쉬운 대한민국 헌법>을 편찬했고, 2018년에는 우리 민족의 얼을 담은 각종 전통문화 107가지를 담아낸 <한국 전통문화와 상상력>를 완성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이해해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그 어휘는 국어 선생님인 제가 봐도 어려웠어요. 어휘가 어렵다는 건 국민이 헌법을 볼 시도도 어렵다는 뜻이에요. 헌법 전공도 안 했지만, 헌법 관련 도서 30~40권을 독파하며 헌법 조문들을 이해하고 쉬운 낱말 하나하나를 일일이 주석으로 풀이했어요. 한글을 연구하는 내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꼭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한글 고유어 2500여개 익히는 <아름다운 순우리말 공부>

그는 올해 신간 도서 <아름다운 순우리말 공부>를 펴냈다. 신간은 고유어 2500여개를 가려 모은 어휘 학습용 익힘책이다. 그는 휴가를 '말미'로, 인터체인지를 '나들목'으로 가려 쓰는 것처럼 조리차(절약), 길미(이자), 땅꺼짐(씽크홀) 등 한자어나 외래어, 부적절한 외국어로 만든 신조어보다 토박이말을 살려 썼으면 하는 뜻에서 책을 펴냈다.

책은 먼저 낱말의 개념 정의를 이해하고 예문의 문맥을 파악해 주어진 순우리말을 학습하는 방법으로 구성했다.

“고유어의 총합은 오롯이 한민족의 얼이자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에요. 그런데 정겹고 맛깔스러운 고유어가 하나둘 빛을 잃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울뿐더러,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어휘의 폭과 깊이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어요. 겨레의 삶을 풍성하게 담은 순우리말이 언중 사이에서 사용빈도가 낮아지면서 점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책을 통해 우리말 실력을 점검하고 모르는 낱말을 익혀 누구나 고유어를 쉽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요.”

 

▲한류 열풍 … “우리말 더 소중히 가꿔가야”

그는 한글 연구를 진행하며 개인 시간을 모두 쏟아왔다. 관련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제자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시간만 되면 대학도서관과 대형서점을 찾아다니고, 고서점도 가 사전이란 사전은 모두 구해서 찾아보고 연구논문도 찾아다녔어요. 대학교에 간 제자들에게 학회를 복사해 보내달라고도 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개인적인 시간은 없었던 거 같아요. 한때는 책을 쓰는 것이 너무 힘들어 더는 책을 내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제가 사랑하는 한글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더라고요. 구체적인 계획은 정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한글 연구와 관련된 책을 써나가려고 해요.”

그는 최근같이 세계적인 한국 문화 열풍이 불고 있을 때 더더욱 한글을 아끼고 가꿔가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적으로 한국 노랫말을 읊조리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어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말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노력이 절실해요. 우리가 모두 한민족이라는 생각으로 우리말을 올바르게 쓰도록 노력해야 해요.”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