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파리 서남쪽 55㎞ 지점에 위치한 랑부이예(Rambouillet) 성은 프랑스 대통령의 공식적인 여름휴양지로 사용되고 있는 유서 깊은 성곽이다. 1975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은 미국을 위시하여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수뇌들을 이곳에 초청하여 회담을 열었다. 중동전쟁 직후 석유파동과 선진 공업국들의 경기침체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회의로 G7 회의의 첫 모임이었다. ▶랑부이예 회담을 성사시킨 지스카르 데스탱은 샤를 드골 대통령 집권 당시 33세에 재무차관 36세 때에는 재무장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2차대전 말기에 레지스탕스 운동에 협력했고 전후에는 프랑스의 엘리트 코스인 에콜 포리테크니크와 국립행정학교(EWA)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드골이 물러난 후 퐁피두 대통령 시절 지스카르는 두 번째로 재무장관을 맡았다. 프랑스 재무장관을 10여년간 맡았던 그는 퐁피두가 임기 중 별세한 후 실시된 선거에서 1974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시 파리주재 외국특파원협회의 수석부회장직을 맡고 있던 필자는 지스카르 대통령의 초청으로 언론인들과의 간담회 또는 오찬에 대통령 관저 엘리제궁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엘리제궁으로의 초청장은 항상 인편으로 전달되어서 필자가 거주하던 아파트 관리인이 놀라는 표정을 짓던 기억이 난다. 지스카르 대통령은 전임들 보다도 자주 해외순방에 나섰고 그의 인도 방문과 시리아 방문 그리고 구아델로프에서의 서방 4개국 회담에도 수행 취재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스카르 데스탱은 경제전문가답게 프랑스의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에 국민들을 설득하고 기술발전을 병행하여 한때는 전력의 80%를 원자력으로 충당하는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와도 원자력 분야의 협력을 증진시키며 기술이전에 적극적이었다. 지스카르 대통령은 프랑스의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항공산업과 TGV로 불리는 고속열차 그리고 자동차산업 발전에도 적극적이었다. 1970년대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 한국과의 경제협력은 순조롭고 활기있게 진행되었지만 군수산업 분야는 해군용 미사일과 헬리콥터 정도가 고작이었다. ▶명석한 두뇌에 경제전문가답게 원고 없이 방대한 예산안 설명을 숫자까지 나열하고 내외신 기자들과의 회견에서도 보좌관들이나 자료없이 까다로운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필자가 원자력 발전의 위험에 대해 질문했을 때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확신하는 사업이라고 대답하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의 산업경쟁력을 제고시키면서 한국과의 경제협력에도 적극적이었던 그가 94세에 코로나 합병증으로 영면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