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남석 인천 연수구청장

1974년 8월15일 인천과 서울을 잇는 수도권 전철이 개통됐다. 1971년 4월7일 인천공설운동장에서 경인선 전철화 착공식이 열린지 3년4개월여 만이다. 시민들은 처음 보는 자동문과 전기로 움직이고 지하로도 달리는 전동차를 보며 마냥 신기해 했다. 일제강점기 열강들의 각축 속에 제물포와 노량진을 오가던 경인철도(1899년)의 시작과는 사뭇 다른 감동이었다.

그 후 2000년 '경인국철'이라는 이름 대신 '1호선'이라는 명칭으로 정리됐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일제강점기의 '경성(京城)'이라는 명칭과 '인천(仁川)'의 머릿 글자를 따서 '경인선'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굴곡진 우리 근대사를 감안하면 감동과 새로움 만으로 대변하기엔 아픈 이름이다.

이런 명칭은 '경인선'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910년 한일합방에 따라 서울이 일본에 의해 경성으로 불리기 이전부터 철도노선 가운데 경성~부산은 경부선(1905년), 경성~신의주는 경의선(1906년)으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일제 잔재인 현재의 철도 노선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단골 논란거리가 된지 오래다.

하지만 100여년이 지난 지금 환경은 많이 달라졌다. 초전도체를 응용한 자기부상고속열차가 달리고 빅데이터·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도로가 눈앞에 있다. 중앙 중심의 고리타분한 사고도 올해로 민선자치 25년째를 맞으면서 많이 변했다. 기존 내륙이나 서울 중심의 관점에서 이제 해양과 지방이 중심이 되는 정책적 변화도 자주 눈에 띈다. 지금 대한민국 KTX의 허브로 떠오를 연수구 송도역의 미래와 상징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인천 송도역에서 출발하는 인천발 KTX 3개 노선이 내년에 첫삽을 뜬다. 2025년 개통 목표로 진행하는 인천발 KTX 건설 사업이다. 부산행과 목포행 KTX는 수인선과 경부고속철도선을 활용하는 지선의 개념이다. 여기에 당초 경기도가 출발지였던 강릉선도 송도역으로 출발점이 변경된다. 예전 '동차'라고 불리던 꼬마협궤열차의 대명사가 된 수인선의 마지막 역사 송도역이 이제 대한민국 미래교통의 출발점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이를 위해 연수구는 지난해부터 송도역사 복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옛 송도역사 자리에 수인선 협궤열차 객차와 각종 시설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민공간으로 2022년 개방할 예정이다. 송도역사를 시작으로 송도역전시장과 시립박물관, 송도유원지를 넘어 송도국제도시까지 이어지는 연수구만의 미래관광벨트 조성도 차질 없이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 우리 스스로 인천 송도역에 대한 브랜드 가치와 한국 철도의 시발점인 인천의 자존감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민선5기 시절인 지난 2012년 2월 연수구청에서 인천~수원간 복선전철 개통에 따른 노선명, 역명 제•개정 주민공청회가 열린 일을 기억한다. '수인선'이라는 명칭이 수탈의 역사를 담은 일제의 잔재이고 수원의 3배나 되는 인천의 인구와 철도선이 지나는 부분도 인천이 훨씬 길어 '수인선'이 아닌 '인수선'으로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당시 구청장 신분으로 설문결과와 의견을 모아 한국철도공사에 노선명칭 변경의 당위성을 항변했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답변과 허탈함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수인선'을 '인수선'으로 바꾸지 못한 과오나 인천에서 출발하지만 강원의 이름만 남아있는 영동고속도로처럼 우리의 이름을 내어주는 일이 반복되서는 안된다. 한국 철도의 시발점이자 근대화의 산파 역할을 해 온 인천의 이름을 되찾는 일부터 함께 나서야 한다. '인부선(인천~부산)'이건 '인목선(인천~목포)'이건 아니면 '인강선(인천~강릉)'이건 당당하게 우리를 되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그동안 일본식 이름이라는 지적과 함께 송도국제도시와 혼동을 주는 송도역에 대한 명칭도 지역민에게 의견을 물어 검토해 볼 일이다.

대한민국 KTX의 허브 역할을 하게 될 송도역의 변신은 이제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인천발 KTX의 노선 명칭은 해당사업의 실시계획을 승인·고시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지정해야 한다. 내년 2월까지 노선 명칭 변경에 대한 시민들의 공론화와 자치단체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한국 철도 130년 역사의 주인공이면서 인천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노선 명칭 하나 없는 설움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당장 시민운동 차원의 더 적극적이고 치밀한 준비와 대처가 필요한 이유다. 인천의 이름표를 되찾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