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년된 유물 모이자 선사시대 삶이 보이더라
▲ 붉은간토기

1999년부터 인천 검단지역에 토지구획 정리사업이 시작됐다.

사업을 위해 토목 공사를 하던 중 유물이 대거 발견됐다. 이때 문화유적 조사를 착수해 청동기시대를 중심으로 구석기 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을 대규모로 발굴 할 수 있었다.

검단선사박물관은 이런 성과를 토대로 2008년 11월 인천의 유일한 선사시대 전문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 반달돌칼
▲ 돌검

▲선사시대 생활상 한 눈에

검단선사박물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의 총 면적 1970㎡ 규모로 상설전시실, 전시형 수장고, 체험학습실, 야외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검단·원당·동양·불로지구 등 서북부 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시대 유물들을 시대별, 유적지별로 전시하고 있는데 제1전시실에서는 간석기, 뗀석기, 각종 토기 등 약 200여점의 유물과 청동시시대의 생활상을 재현한 디오라마를 만날 수 있다.

-구석기시대

인천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2000년대 들어 발굴 조사가 시작됐고 현재 10개 이상의 유적이 발견됐다. 구석기시대 6만5000년 이전부터 2만년 전후에 이르기까지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이들은 오랫동안 유지된 석기 제작 기술 전통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검단 지역에서는 원당동 유적과 불로동 유적에서 구석기 시대 고토양층과 뗀석기가 발견됐다. 이 유적들은 지형이 형성되던 6만5000년 전 것으로 검단선사박물관은 추정한다.

그 외 인근 지역인 서구 검암동, 연희동, 가정동 유적에서 몸돌, 격지, 주먹도끼 등이 출토됐다.

검단선사박물관은 불로동 유적 주먹도끼와 원당동 유적 '찍개' 등을 비롯한 여러 구석기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석기의 돌감은 주로 석영과 규암이며, 그 외에도 응회암 등 다른 돌감 등도 사용됐다.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 중 하나인 주먹도끼는 대체로 끝은 뾰족하나 손으로 쥐는 부분은 뭉툭해 편하게 쥐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자갈돌 등의 몸돌(石核) 겉면을 크게 떼어내고 가장자리를 다듬어 날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주먹도끼는 한가지 용도라기 보다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주로 짐승의 사냥과 도살, 가죽이나 나무, 뼈의 가공 작업에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맥가이버 칼'에 비교하기도 하는 이유다.

-신석기시대

약 1만년 전부터 시작된 신석기 시대는 구석기 시대보다 다양한 도구들이 사용됐다. 돌을 날카롭게 간 간석기를 이용해 사냥과 채집이 이루어졌으며 뼈바늘 등을 이용해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또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한 곳에 정착하는 생활을 했다. 농사로 얻어진 여러 음식물을 저장하고 조리할 수 있는 토기도 이 시기부터 제작됐는데 빗살무늬 토기가 대표적이다.

한반도 중서부 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강가나 바닷가 바닥에 쉽게 꽂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토기 밑이 뾰족하게 만들어졌다.

빗살무늬 토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골고루 출토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빗살무늬 토기 문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검단선사박물관 제1전시실 신석기마을 진열장에서 빗살무늬토기편(櫛文土器片)을 볼 수 있다.

이 토기편은 이름 그대로 완형이 아닌 토기 조각이며 '아가리'에 가까운 부분이다. 안과 밖이 모두 적갈색을 띠며 토기편 바깥에 가로방향의 생선 뼈무늬가 새겨져 있다. 끝이 뾰족한 도구로 누르거나 그어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5세기 무렵부터 4세기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이뤄진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여러 변화가 나타났다. 이전보다 큰 마을에 모여살기 시작하였으며, 사람들 사이에는 부와 신분의 격차가 발생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우두머리격인 족장이 나타나고 더 많은 식량과 땅을 얻기 위해 다른 마을과 전쟁을 하며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검단선사박물관은 제2전시실에 청동기시대 집터 7기를 복원해 놓고 검단지역의 고고학적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동네 유물 다 모여라!

-원당동 유적

검단 지역의 남쪽에 위치한 원당동 땅 속에서 신석기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민무늬토기가 확인됐다. 이는 오랜기간 동안 주민들이 점유했던 마을임을 증명한다.

원당동 집터에서는 당시 의례에 사용한 토기로 붉은간토기가 발견됐는데 표면을 붉은색이나 검은색 광택이 나도록 처리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토기와는 구분을 뒀다. 또한 농경에 활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반달돌칼을 비롯해 각종 화살촉과 석창, 석기를 제작하는데 사용되었던 숫돌 등 많은 석기들이 출토됐다.

-불로동 유적

불로동에서 삼국시대 집터와 토기나 기와를 구웠던 가마가 나왔다. 백제 시대의 기와는 그 이후의 고려, 조선시대의 기와보다 두께가 매우 얇았다. 가마에서는 기와와 토기의 형태를 빚을 때 활용한 도구 '내박자'도 함께 출토됐다.

서구 불로동 집터에서 출토된 가락바퀴와 그물추는 삼국 시대에 주로 사용됐다.

가락바퀴는 실을 뽑을 때 사용하는 방적 도구의 하나로 지금까지 확인된 선사시대의 가락바퀴는 원반모양, 팽이모양, 주판알모양, 공모양 등이 있다. 가락바퀴 가운데에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 구멍에 가락바퀴의 축이 될 막대를 넣고 그 축을 돌려 실을 꼬아서 뽑았던 것이다.

-동양동 유적

계양구에 위치한 동양동에서는 신석기 시대유구를 비롯한 이른 시기의 청동기시대 집터, 삼국시대 주구묘, 백제시대 움무덤, 독무덤 등이 몰려있었다. 오랜 기간 주민들이 살았던 흔적을 말해 준다.

동양동 토광묘에서 출토된 무덤 속 부장품은 목이 짧은 것이 특징이고, 회갈색을 띤다. 발굴 당시 아가리 부분이 일부 떨어져나간 상태였고 항아리 안쪽 면에 와 손가락으로 누른 흔적이 있었다.

 

 


 

▲이승우 검단선사박물관장 “인천 유일 선사전문박물관, 문화재청서 3700점 추가 위탁 예정”

 

“가족단위 지역주민들이 많이 찾는 박물관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안성맞춤인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죠.”

이승우 검단선사박물관장은 인천의 하나 밖에 없는 선사시대 전문 박물관인 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주제로 구성된 교육 과정을 운영 중이다.

“올해 체험전시실을 전면 개편해 '우리동네 Go, 古! 탐험'이라는 특별전을 전시 중입니다. 지금까지 인천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유적과 유물을 어린아이들이 놀이하듯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죠. 체험학습실 한쪽에는 역사와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도서 1500여 권이 비치된 아동도서실도 있고 야외에는 자연학습 공간도 있답니다.”

인천 북부지역에 마땅한 종합박물관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 관장의 어깨는 더 무겁다.

“이 구역 주민들이 박물관을 통한 문화예술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조만간 문화재청으로부터 3700점을 추가로 위탁받아 관람객들에게 선을 보일 계획이죠. 또 비좁은 전시 공간을 개선하기 위한 박물관 이전·신축 사업도 충실히 추진하겠습니다.”

/글·사진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공동기획 인천일보·인천광역시박물관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