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순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12월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퇴장한 가운데,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드디어 통과되었다. 이 법에 의거하여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에 대해 확성기 방송을 하거나 전단을 살포하는 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대북전단 살포 행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던 것이 이제 법에 의한 엄중한 심판과 처벌을 받게 된 것이다. 오늘 남북관계의 파국을 가져오더라도 북한주민의 인권을 위해 대북전단의 살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범들은 법적처벌을 감수하고 풍선을 다시 날릴 것이다. 투쟁이란 원래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이니 그 역시 그들의 선택이다. 그렇지만 이 법의 통과로 제3자의 돈을 받아 이득이나 생계를 도모하기 위해 대북전단을 날리던 행위는 다시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이법이 통과하기 전 11월26∼27일 국회의원 회의실에서는 '분단체제담론의 해체와 한반도시민의 등장'이라는 이름의 정책연합 학술대회가 열렸다. 8개의 대학 연구단 및 연구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10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지고 총 52명의 발표자들이 등장한 큰 학술행사였다. 그런데 대북전단살포금지법과 학술행사는 동일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 2020년의 남북개성연락사무소 폭파사건으로 나타난 남북관계 악화에 대한 심각성의 성찰이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북한의 대북전단살포에 대한 항의에 부응하여 판문점선언을 지키고자 만들어진 법이었다면, 한반도시민의 등장 학술대회는 사회학, 여성학, 철학, 역사학, 법학, 정치학, 문화인류학, 인문학, 사회복지학 등 다양한 전공별로 지난 십 수년간 탈북민을 연구해온 연구자들이 한반도가 평화체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탈북민 정책과 역할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함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간 남북관계 개선을 반대하는 탈북민단체들의 행동이 빈발했던 시간을 돌아보면서 분단체제 담론의 해체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사회적 공론의 장을 연 것이다. 한반도시민과 민주시민교육, 젠더와 법, 지역사회에서 타자와의 공생, 이산, 분단이데올로기와 분화된 정체성, 탈북민혐오와 분단적대성, 타자화된 정체성, 실태조사, 북한이탈여성의 미투, 탈분단 평화교육 등 총 10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학술행사를 준비하게 된 문제의식은 “판문점선언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 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였다. 주권국가로서 국가원수가 했던 판문점선언조차 지킬 수 없었던 국가의 무능함에 대한 한탄은 '한반도시민'이라는 새로운 주체의 자기발견으로 전환되면서 다시 탈북민사회를 향한 종전평화선언을 제안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이 학술대회의 화룡점정은 민족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과 '민족과 시민의 내적 결합체로서 한반도시민'이 변혁적 주체임을 제기한 데에 있다. 기조발제에서 사회철학자인 선우현은 “통일 민족(국민)국가를 주도적으로 수립해 나갈 '실천적 주체'이자 수립된 통일국가의 구성원은 기본적으로 '민주적 정체성'을 지닌 '시민'이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한반도시민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며 남한의 시민과 북한의 공민, 그리고 남북한의 경계인인 탈북민과 귀환동포, 결혼이주자를 포함하는 다양한 시민으로 구성된다.

화려하지만 텅빈 세계시민을 넘어서 자신이 사는 한반도라는 작은 땅에 함께 살아가야 할 자신의 이웃과 나를 발견하는 인식이 한반도시민의 발견점이다. 우리 시대 소수집단이자 남북한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존재하는 탈북민 연구에서 한반도시민의 발견이 비롯되었다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다. 이 칼럼은 한반도시민 학술대회를 주최했던 필자가 이 대회에서 발표했던 아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행기'란 분단체제에서 남북한이 실질적인 종전선언을 통해 대결의 '분단체제'를 마무리하고 양 체제가 상호인정하며 교류하고 협력하는 '평화체제'로 진입하기까지의 국면을 가리킨다. '평화체제 이행기'이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시민이 출현하여 이끌어간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한반도시민의 시간이며 분단체제 해체를 위해 원탁에서 머리를 모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