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 열아홉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1960년대 최고 가수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란 곡이다. 그 후 여러 가수가 다시 불러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이기도 하다. 1967년엔 김기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섬마을 선생> 영화가 만들어졌다. 노래가 히트를 치자 그 노래를 영화화했는데, 그 촬영지가 바로 현 옹진군 자월면 이작도(계남분교 자리)다. 당시 명성을 떨치던 문희·오영일·이낙훈·안인숙 등의 배우가 나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문희가 영화 속에서 손을 짚었던 나무는 '문희 나무'로 알릴 만큼 마을 사람들의 애착도 남다르다. 지금은 <섬마을 선생님> 영화를 찍었다는 기념비만 덩그러니 놓였다.

이작도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무렵 피난처였다. 섬엔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난민들이 살았다.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엔 이즉도(伊則島)란 이름으로 나온다. 이작도란 지명은 세곡선(稅穀船)을 약탈하는 이적(夷賊)이라 불리던 해적의 근거지여서 붙여졌다고 한다. 해적이 섬에 숨어 지냈다고 해서 이적도라 칭하다가, '이적'이 '이작'(伊作)으로 변했다고 한다. 고증은 안된 채 구전되고 있을 뿐이다. 섬 크기를 기준으로 삼아 대이작(大伊作)과 소이작(小伊作)으로 부른다.

이작도는 풀등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풀치라고도 하는 풀등은 '바다의 오아시스'다. 대이작도와 소이작도 서남쪽 바다에 형성된 수중 모래섬이다. 썰물 때면 3~5시간 동안 보였다가 밀물 때면 다시 사라진다. 여름철엔 단단한 모래로 이뤄진 풀등 위에서 족구와 배구 등 공놀이를 하고, 해수욕·일광욕도 즐길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질 때 드러나는 풀등의 면적은 최대 90만여㎡에 달할 정도로 위용을 자랑했다. 그런데 요즘은 인근 해역의 바닷모래 채취 등 환경변화로 날로 줄어든다.

청정바다와 여러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는 이작도 주민들에게 요즘 고민거리가 생겼다. 해양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풀등'을 관리하고 탐방할 수 있는 선박 건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해양수산부가 2003년 뛰어난 자연경관과 특이한 풀등의 지형 등을 이유로 이작리·승봉리 일대 해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만 했지, 관리에 소홀하다는 게 주민들의 지적이다. 그래서 적어도 풀등 생태계 변화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관광객들이 탐방할 수 있는 50인승 선박 건조를 최근 섬을 방문한 박남춘 인천시장에게 건의했다.

해수부·인천시·옹진군 등에선 풀등의 가치를 널리 알려야 할 때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풀등은 인천의 '보물섬'이다. 주민 숙원대로 일정 규모의 배를 만들어 풀등을 오가게 하면, 더 많은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어 제격이다. 섬을 찾는 사람이 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한몫을 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이지 않은가. 아무쪼록 주민과 관광객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