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교육 안 받은 불법체류업자
우레탄작업 땐 화기금지 안 지켜
울분터진 유족 철저한 수사 촉구
▲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중 화재가 발생해 4명이 숨지는 등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군포시 산본동 아파트 화재현장에서 2일 오전 한 피해 유족이 사고 현장에서 오열하고 있다(왼쪽). 경찰과 국과수, 소방당국 등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한 명뿐인 아들이었다고요. 둘도 아니고, 하나요.”

2일 오전 군포시 산본동 한 아파트. 아파트 12층 한 가구가 검게 그을린 가운데 바닥 곳곳엔 유리 파편이 널브러져 있었다. 지난 1일 4명이 숨지는 등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군포 아파트 화재'의 처참한 흔적이다.

이날 합동감식이 벌어지는 현장은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으로 가득했다.

유족들은 “이게 대체 있을 수가 있는 일이냐”며 “수사든 뭐든 제대로 해서 업체의 책임을 명명백백히 가려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당시 사고로 추락해 사망한 박모(31)씨는 부모님에게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직장을 구하면서 독립해 살았지만, 평소 자주 연락해 부모님 안부를 묻는 등 효성이 지극했다. 지난달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와 가족들이 모여 김장을 하기도 했다.

결혼은 불과 석 달 앞두고 있었다. 박씨는 2018년 8월부터 교제하던 사람과 지난달 결혼하기로 했으나 코로나19 확산 탓에 내년 2월로 미뤘다. 신혼집까지 마련해 생활하던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인테리어 업체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사고로 이 모든 게 사라졌다.

박씨는 평소 고된 노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날에도 자정인 12시까지 근무했다. 오전 6시30분쯤부터 시작해 18시간가량 과로를 하고, 그러고선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씻은 뒤 다시 사무실로 향해 차에서 쪽잠을 잤다.

출근 시간이 워낙 일렀기에 어쩔 수 없던 것이다.

특히 박씨와 함께 일하던 노동자 4명이 모두 불법체류자이면서, 안전교육조차 받지 않았다는 진술도 나왔다. 우레탄 작업 시엔 난로를 틀 수 없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제대로 쉬지도 못했고, 업체 측의 안전 소홀로 세상을 떠난 박씨를 놓고 유가족들은 더욱 원통해 했다.

유가족들은 업체 측에서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박씨 삼촌 박모(58)씨는 “누구보다 소중한 아이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겪고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느냐”며 “이들에 대한 수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불이 난 집과 같은 라인에 거주하던 주민 35세 여성 A씨도 남편과 여섯 살 아들을 남겨두고 화마로 세상을 떠났다.

A씨는 옥상 계단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 있던 중 불이 나자 아파트 상층부로 이동하던 중 연기에 질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인근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로 사고 당일 몸이 좋지 않아 휴가를 내고 집에 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A씨와 함께 옥상 계단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성 B(51)씨도 불이 난 집과 같은 라인에 거주하고 있었다.

B씨의 아들(23) 또한 연기를 많이 마시고 화상까지 입어 현재 중태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참사의 현장에는 의인도 있었다.

사다리차 기사 한상훈(29) 씨는 이날 창틀 운반작업을 위해 현장을 찾았다가 사고를 목격한 뒤 주민 3명을 구조했다.

그는 불이 난 12층의 옆집에서 20대 여성이 “여기 사람 있어요”라며 흐느끼는 모습을 본 뒤 연기를 무릅쓰고 자신의 사다리차를 뻗어 여성을 구조했다. 곧이어 15층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청소년 남매를 구하기 위해 14층 높이까지로 제한된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차를 아파트 옆으로 바싹 붙여 이들까지 구했다.

그는 “사고를 직접 목격하고 주민들을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생각해 본능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며 “다음에 같은 일을 겪더라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가 구조한 청소년 남매 중 한 명은 3일 수능을 앞둔 고3 학생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경찰은 유가족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업체의 과실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최인규 기자 choiinkou@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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