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논설위원

매년 12월 첫째 주 금요일에 고등학교 동창 송년회가 열리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올해는 그냥 넘어가려는 것 같다. 서울에 있는 학교여서 모임이 항상 서울에서 열리는데 그쪽이 비상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울에는 지난 24일부터 연말까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보다 더 강화된, 방역 최고 단계인 3단계에 준하는 '천만시민 긴급 멈춤기간'이 시행된다. 10명 이상 참여하는 집회는 전면금지되며, 송년회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후 10시 이후 버스•지하철 운행이 줄어들고, 막차 시간도 앞당겨진다.

서울시는 “생업에 필요한 최소한 활동만을 남겨두고 시민 모두가 적극 동참해 달라”고 밝혔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코로나는 정말 어려운 상대다. 사람 안 만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송년회를 진행한다면 '강심장'이라는 말보다 '파렴치'라는 비난이 등장할 것이다..

인천•경기를 비롯한 다른 지역도 연말모임을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확산 중이다. 전북도는 '연말연시 도민 3대 실천과제'를 발표했다. 연말모임을 갖지 말자는 것이 골자인데, 1960년대식 구호가 연상된다. 삼성전자•현대기아차•한화•LG전자 등 대기업은 잇따라 회식 금지령을 내놓고 있다. 지침이 강경해, 어겼다가는 자리를 잃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 송년회를 '랜선 모임'으로 대체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온라인회의 플랫폼 '줌'(Zoom)을 활용해 모니터 속에서 얼굴을 맞대는 방식이라고 한다. 각지의 주거지에서 각자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한다. 윤모(30)씨는 “줌에선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면 잘 들리지 않다 보니 한명씩 말하게 된다. 오히려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에 '온라인' 또는 '비대면' 송년회를 검색하면 기획 전문업체들이 나온다.

하지만 원래 송년회 만큼 소소한 즐거움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술잔을 부딪치며 되는 소리, 안되는 소리 지껄여가며 회포를 푸는 것이 송년회다. 그렇게 친목과 유대감을 형성해 왔다. 인터넷 송년회가 효용이 있다고 하나, 사람에게는 효율이라는 잣대보다 정이 더 중요하다.

코로나가 '방구석 운동', '방구석 관람'에 이어 '방구석 송년회'까지 등장시키고 있다. 해괴하지만 바이러스 차단이 최우선 가치가 되는 수상한 세월이니 방역당국의 말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하지 말라는 것'을 했다가 인생이 망가지는 경우를 얼마나 무수히 보아 왔는가. 송년회는 흔히 망년회로 불리는데, 이것이 잊혀져가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