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너 어디 있었니] 98. 침묵
[한자 너 어디 있었니] 98. 침묵
  • 인천일보
  • 승인 2020.11.30 19:53
  • 수정 2020.11.30 19:51
  • 2020.12.01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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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고뇌는 어디가고…면피용 카드로 변질
▲ (묵)은 캄캄한 밤(黑흑)에는 개(犬견)도 짖지 않는 고요함을 나타낸다. /그림=소헌

12년 전 학교에 가던 피해 여아(8세)를 상가건물 화장실로 끌고 가서 영구적인 장애를 입힐 정도로 처참하게 성폭행한 조두순이 출소를 준비하고 있다. 그때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찰과 달리 범행 당시 만취滿醉라는 이유로 징역12년을 선고한 사법부에 대해 아동성범죄가 매우 관대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반성하느냐?”는 물음에 지금까지도 조두순은 침묵하고 있다.

“속지 마! 일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는 도둑놈이고, 지옥으로 가는 기생충일 뿐이야.” 한국과 인연을 맺은 미국인 승려 현각은 한국불교의 물질화를 비난한 뒤 유럽으로 건너가 포교 중이다. 그가 SNS를 통해 건물주 및 행실불량 논란에 오른 혜민을 비난했다. 이후 혜민은 모든 활동을 내려놓는다며 침묵했다. 참고로 혜민의 본명은 ‘라이언 봉석’으로 국적은 미국이니 당연히 군대는 갔을 리 없다.

호비일립(虎鼻一粒) 호랑이 코에 붙은 밥풀때기 한 알이라는 뜻으로 ‘호랑이 코빼기에 붙은 것도 떼어먹는다’는 4자속담이다. 눈앞에 당한 일이 급하게 되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해야 하는 경우를 비유한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를 했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뒤에서 묵인默認하고 즐기는 대통령이 문제라고 하거나, 더 이상 침묵하지 말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도 한다. 급한 자가 먼저 밥풀이라도 떼어 먹어야 할 지경이다.

 

沈 침/심 [잠기다(침) / 성씨(심)]

①_(망설일 유)는 집(_멱)에 들어갈까 말까 머뭇거리는 사람(_인)이나, 베개(_)를 베고 잠을 잘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_)을 뜻한다. ②많은 사람들이 어깨동무(_)를 하고 걸어가는(_) 모습을 표현할 때는 _(나아갈 임)이라고 쓴다. 군중이 시위하는 상황을 연상하면 된다. ③갑골문에서 沈(침)은 강물(_수)에 잠겨 떠내려가는 소(牛우)를 뜻했다. 그러다가 후대에 이르러 목에 칼을 찬 죄수(_)를 수장(水葬)하는 글자로 변했다. ④沈(가라앉을 침)을 사람의 성씨나 강물의 이름으로 사용할 때는 ‘심’으로 발음한다.

 

默 묵 [잠잠하다 / 고요하다]

①黑(검을 흑)은 불(_화) 때는 아궁이(土)와 굴뚝(口)에 날리는 불티(八)를 그린 글자다. 아궁이는 불에 그을려 검게 되었다. ②_(잠잠할 묵)은 아주 캄캄한 밤(黑흑)에는 개(犬견)도 짖지 않는 고요함을 나타낸다. ③‘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속담을 한 글자로 쓰면 _(묵)이다. ④개가 짖지 않을 때가 _(묵)이라면, 사람이 아무런 말(口구)도 하지 않아 시커멓게(黑흑) 애를 태우는 글자는 _(묵)이다. 때로는 같이 쓰기도 한다.

행형제도 중 가장 오래된 방식은 여러 죄수를 같은 감방에 구금하는 잡거제다. 강한 처벌인 독거제(독방)에 비해 범인의 사회응용력을 부여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죄수들 사이에 악성을 감염시킬 위험성이 있어 주_야간에 잡거와 독거를 혼용한 침묵(沈默)제가 주로 쓰인다. 침묵은 그만큼 고통스럽다.

대통령은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싸움에만 입을 열 것이 아니다. 권력투쟁일 뿐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단식하거나, 사드 자재반입을 저지하려고 경찰과 충돌하는 주민들, 수백 명이나 되는 산업재해 사망자들, 코로나로 폐업하려는 상공인들. 정녕 그들의 피맺힌 절규를 모른체하려는가? 침묵은 민중을 위한 깊은 고뇌를 위해 필요하지 본인의 처지를 숨기는 면피용이 아니다. 호랑이 코빼기에 붙은 밥풀을 떼어먹는 지도자가 그렇게 없을까?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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