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이 포격으로 연평도 마을이 화염에 휩싸여있다. 사진제공=옹진군청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이 포격으로 연평도 마을이 화염에 휩싸여있다. 사진제공=옹진군청

2010년 11월23일, 아침부터 남북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우리 군은 호국훈련 중이었고, 북한은 이를 '북한침략전쟁연습'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은 이날 오전 8시20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 영해에 대한 포 사격이 이루어질 경우 즉각적인 물리적 조치를 경고한다”는 통지문을 발송했다. 우리 군은 훈련중단 요청을 거절했고, 오전 10시15분부터 오후 2시24분까지 약 4시간에 걸쳐 연평도 주둔 해병대가 3657발의 사격훈련을 벌였다.

연평도 해병대 포격훈련이 끝난 10분 후인 오후 2시34분, 조선인민군은 개머리 해안부근 해안포기지에서 76.2㎜ 평사포, 122㎜, 대구경 포, 130㎜ 등 포탄 170여발을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가를 향해 포격했다.

우리 군은 북한의 1차 포격이 잠잠해지자 13분 후인 오후 2시47분쯤 대응 포격을 시작해 북측 무도 포진지쪽에 50발, 개머리 포진지쪽에 30발 총 80여발을 발사했다. 또 오후 2시38분 KF-16 2대에 이어 KF-16 2대와 F-15K 4대를 출격시켰다.

북한의 포격에 우리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도 60명이 발생했다.

이날 북한의 포격은 백령도 해역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 만이었고, 북한이 남측 영토를 향해 직접 공격을 하고 민간인 사상자를 낸 것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연평도 주민 1100여명은 3일에 걸쳐 어선이나 해경 경비함정을 나눠타고 인천으로 피신했다. 이들 주민은 인천 중구 인스파월드 찜질방에서 피란 생활을 했고, 임시거주지인 경기 김포 한 아파트를 거쳐 이듬해 2월까지 3개월간 연평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