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

따뜻한 양지맡에 앉아

햇빛 쬐고 계신 할머니

 

비어 있는 허공만

계속해서 비어 있는 허공만

갖고 노셨나

 

가다가다 문득 시선 마주쳐도

아, 그 눈!

 

정말 그 눈 속엔 아무도

아무것도 없네

 

이 가을 말미에 이 시를 읽고 있으면 갑자기 산다는 것이 숙연해진다. 모든 욕망도 시간도 다 놓아버린 저 텅빈 눈, 무채색에 담긴 허공의 눈, 그 속에 드리운 풍경은 삶의 무게와 질량을 모두 버려서 한 장의 흑백사진을 보는 것처럼 표상이 없는 세계다. 우리네 인생살이가, 혹은 공처(空處)가 된 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지난했던가에 대한 물음은 이미 부질없는 일이다.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