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비 아닌 핌비가 된 마을…놀러 오실래요

-시작은 어느 할머니의 임종
손자 부탁 유언으로 발달장애 아동과 만남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픈 장애인 부모들
마음 이해되면서 더불어 살아보고자 추진

-보호시설 NO! 함께 채워주는 공동체
장애인만 거주하는 곳 아닌 가족이 사는 곳
차별 없이 존중하기에 개개인 존엄성 회복
이웃들도 환영 마을 주민으로 받아들여

-늘 부족한 장애인 정책 … 이제는 서로 인정할 때
장애인 가족들 정부에만 기대지 말고
정부는 낡은 지원의 한계 인정 필요
입소시설 위주 제도 벗어나 자립방향 제시를
▲ 발달장애가족과 함께 안성시 공도읍에 자립형 마을공동체인 '희망에코마을공동체'를 마련한 도미니코수도회 김성구(베드로) 신부는 “기도하면서 느낀 기쁨도 크지만
마을공동체를 만들면서 진짜 행복을 알게 된 것 같다”며 앞으로도 마을공동체가 더 확대되길 희망했다.

“6번은 죽다 살은 느낌이에요.”

발달장애가족과 함께 안성시에 자립형 마을공동체인 '희망에코마을공동체'를 마련한 도미니코수도회 김성구(베드로) 신부의 소회다. 국내에 발달장애가족을 위한 자립형 마을공동체가 들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즉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이라는 의미다. 입주까지 6년이 걸렸다. 지난 9월 중순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간 까닭에 어려움이 많았어요. 같은 뜻을 가진 사람조차도 의견이 갈리기도 했죠. 특히 법과 제도에 맞춰 진행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마을공동체를 총괄할 법이 없다 보니, 여러 분야 법을 찾아보고 해결해 나가야 했습니다. 어렵게 만들었지만 다시 추진한다고 하면 만들지 못할 것 같아요.”

김 신부는 수도원에서 사도직을 맡고 있을 당시 맡게 된 발달장애아가 인연이 됐다. 인연이 커져 발달장애가족들과도 교류했고, 그분들과 함께 마을공동체를 구상하게 됐다.

“수도원 신부 한 분이 어느 할머니 임종식을 갔는데 손자가 발달장애아였어요. 그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수도원에서 손자를 맡아주는 것이었죠. 자기 자신을 엄마라고 알고 있는 손자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고 해요. 신부의 부탁으로 수도원에서 손자를 맡게 되면서 발달장애인을 이해하게 됐어요. 그리고 또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도 알게 됐는데 그분의 소원이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식과 평생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곳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뜻을 함께한 분들과 마을공동체를 추진했습니다.”

발달장애아 부모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부모가 죽으면 아무런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을 돌봐줄 사회안전망이 불안전한 탓도 있다. 또 사회 규범이 익숙지 않을 뿐, 누구보다 선량한 아이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희망도 있다. 이들이 마을공동체를 만든 이유다.

▲함께 살아간다는 희망

마을공동체는 발달장애아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데서 출발했다. 품앗이, 상부상조 정신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 신부는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지며 발달장애가족의 평생 꿈이 이뤄졌다고 했다. 우선 장애가 있으면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깼다. 발달장애아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어 줄 때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점을 보여줬다. 평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받았다는 측면도 있다. 누구나 똑같은 인간으로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배우고, 알고 있지만 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마을공동체는 정말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중심인 곳이에요. 가족, 엄마, 아빠, 할머니, 형제, 자매 등 한 가족이 같이 모여 살고 의지하고, 격려하며 살고 있죠. 장애에 맞는 환경만 조성해주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이곳은 차별받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곳이어서 행복이 머무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편함을 인정함으로써 인간 존엄성이 회복됐다는 거죠.”

또 김 신부는 마을공동체를 준비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장애인 관련 시설을 지으려는 곳마다 생기는 주변의 반발이 우리가 알고 있는 님비현상, 집값 하락 우려 등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 시설만 들어오는 부분에 대한 거부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시설은 가족이 함께 사는 게 아니라 발달장애아만 입주하기 때문이다. 시설만 들어오면 '세금 퍼주기'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동시에 아이들을 신경 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오는 내재적 갈등이 '반발'로 표출된다고 봤다. 그래서 마을공동체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 더 확신했다. 김 신부는 마을공동체 입주를 준비하면서 주민들이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김 신부의 말처럼 인근 마을 입구 곳곳에는 야촌마을에서 제작한 '희망에코마을 입주를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마을공동체는 발달장애아만 모아놓은 곳이 아니라 부모도 같이 사는 곳이에요. 그 순간 이곳은 시설이 아니라 마을일 뿐이에요. 이 차이가 크죠. 마을은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에 잘나고 못나고, 잘살고 못살고가 의미 없기 때문이죠. 조금만 돌이켜보면 마을 안에서는 힘든 일이든, 좋은 일이든 함께 했어요.”

▲스스로 살아갈 제도적 장치 필요

김 신부는 정부가 장애인 관련 시설을 만들고, 관련 법과 제도로 지원하지만 늘 부족한 현실을 장애가족들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정부 지원에만 기대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할 부분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부모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만을 기다릴 수 없어요. 왜냐면 정부의 정책은 시설 위주면서 아이들을 보호대상으로만 보는 등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요. 우리는 수십 년째 기다리기만 했는데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 의문이에요.”

이때문에 정부도 한계를 인정하고 이제는 장애인들 스스로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은 장애가족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길 자체가 막혀 있는 부분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해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늘 부족한 상황이에요. 특히 장애인 관련 정책은 수십년전에 마련된 기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결국 우리 스스로가 나서야 하는데 관련 법이 없어 못 하거나, 설령 있다 하더라도 각종 규정이나 제도가 여러 곳에 산재해 있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해요. 결국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은 정치권과 정부만이 마련할 수 있습니다.”

김 신부가 찾은 해법은 역시 마을공동체 육성이다. 이를 위한 육성기관이나 지원 조직을 마련하는 방안이 우리 사회의 바꿀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법과 제도는 시설 위주로 제도화돼있거나 관련 법령 자체가 없는 탓에 이를 다 담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나라의 발전도 없다고 단언했다.

“정부가 수많은 장애인을 포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면 좋겠지만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고 시설을 만드는 것만이 대안일지는 의문입니다. 발달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가족이 더불어 살아가는 게 중요해요. 그렇다면 정부는 우리 스스로 나설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하죠. 또 혹시나 모를 악용 사례를 막기 위해 사회를 위한 공동체인지 판단하고 육성할 기관이나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글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

/사진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