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지난 주 형을 확정받고 재수감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죄목 중엔 뇌물죄도 있다. 미국에서 소송을 하며 수십억원의 소송비를 삼성그룹이 대신 물도록 했다는 것이다. 기업 피해에 대한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려고 하자 중소기업들이 울상이라고 한다. 기업을 상대로 피해자 50명 이상이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도 같은 배상을 받게 하는 제도다. 소비자 민원이 잦은 식품•완구제조 등 중소기업들의 걱정이 크다. “회사의 잘못 여부를 떠나 집단소송 한번 걸리면 소송비만으로도 회사가 거덜날 것”이란다.

▶지난달 말 인천 부평구의회에서 '의원 소송비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통과됐다고 한다. 의원이 의정활동으로 인해 피소된 경우 소송비용을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에 따라 부평구의원들은 본회의•상임위원회 등에서 수행하는 의정활동, 해외연수 등 공무여행, 그 밖에 의장이 인정하는 의정활동의 범위에서 소송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의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패소할 경우 지원된 소송비는 환수된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경기도의회와 전북도의회, 경기 의왕시의회, 전남 나주시의회 등 전국 6곳에서 이미 같은 조례가 제정됐다고 한다. 지난해 말 이 조례를 제정한 전북도의회의 경우, 두 달 앞서 만들어진 경기도의회의 조례안을 제목부터 목적, 세부 사항까지 통째로 베꼈다는 지적도 받았다.

▶전남의 한 고장에서는 벌써 소송비를 지원받는 첫 수혜 의원까지 나왔다고 한다. 환경미화원 채용에서 돈을 받고 점수를 조작했다고 시의원이 발언한 데 대해 해당 공무원들이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것이다. 의원 소송비 지원 조례가 전국으로 확산되면 웃지 못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올해 전북의 한 시의회에서는 동료의원간의 불륜 파동이 일었다. 이른바 '지방의회판 부부의 세계'라 불린 사건이다. 이 역시 의정활동의 하나인 해외연수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들 남녀 의원들은 본회의에서 제명됐지만 최근 시의회를 상대로 제명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빨리 조례를 제정했더라면 소송비 걱정은 않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안양시의회는 의장단 선출 과정에서 짬짜미 기명투표 사태 여파로 식물의회 상태다. 의원 10여명이 투표 담합 혐의로 기소될 위기라니 소송비 지원이 시급하다.

▶지난해 경기도의회가 이 조례를 선제 제정할 때 취지는 '의정 활동 위축 방지'였다. 국회의원같은 면책특권이 없어 위험에 방치돼 있다는 뜻인가. 민주시민의 기본이 자기결정, 자기책임의 원칙 아닌가. “그깟 소송비 얼마나 된다고” 할 일 아니다. 시민들은 이 어려운 시기에도 먼지나는 주머니를 털어가며 세금을 내러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