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묻힐거라 생각 안했다
“누명 쓴 윤씨·피해자에 사죄”
억울한 옥살이 윤성여씨 눈물
“모든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 억울한 누명 쓴 윤(성여)씨와 피해자들에게 사죄드린다.”
경기남부지역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56)가 처음으로 법정에 서서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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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수원법원종합청사 501호실에 나온 이춘재는 푸른 수의를 입고 마스크를 쓴 채 경찰관 3명의 인도로 등장했다.
이춘재가 등장하자 재판정에 있던 방청객과 기자들은 일시 침묵해 얼굴을 살폈다. 8차 사건 가해자로 지목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4)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 듯 보기에는 평범한 얼굴이었다. 마스크를 쓴 그의 짧은 머리카락은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진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보여주는 듯 희끗희끗 쇤 모습이었다.
이후 흰색 면 마스크를 일회용 마스크로 바꾸는 사이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그는 공개된 젊은 시절 사진처럼 눈썹이 잘려있었고, 다소 긴 코를 갖고 있었다.
재판관이 증인석에 앉은 그에게 “왜 왔는지 아느냐”고 묻자 그는 다소 주눅 든 목소리로 “네”라고 답했다.
증인석에 앉은 그는 피고인 측 변호인으로부터 집중 질문을 들었다.
앞서 이춘재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증인선서를 한 뒤 자리에 앉아 변호인 측 주 신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변호인은 연쇄살인 사건 후 경찰의 수사과정에서부터 당시의 심경, 또 자백하기 전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는지 등 광범위한 사건을 물었다.
특히 1991년 7월 7일 태안읍에서 초등학생 김모양을 살해한 사건과 8차 사건으로 불리는 중학생 박모양 살인사건 등의 동기를 집중 캐물었다.
자백까지의 경과와 수감 생활 등에 명확히 답변하던 그는 이 '왜'라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못했다.
그는 산길에 발견한 김양을 왜 따라가 강간·살해했냐는 질문에 “그곳에 간 것은 자살하러 간 것이었다. 제가 하는 행동들이 힘들고 그래서 자살하려고 갔었다. 그러다 자살을 못 하고 나오는 길에 김양을 만났다”며 “당시에는 제가 (강간·살인할) 생각을 안 했었다. (산길에서) 제가 나오는 것 등에 놀라서 저를 보고 (김양이) 도망가는 상황이라 (따라갔다)”고 답했다.
이후 변호인의 “그냥 놔두면 그간 사건이 불거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에 “네”라고 했다.
당시 용의 선상에 오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말에 피고인석에 앉아 그를 보고 있던 윤성여 씨는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는 듯 천장을 바라보고 손으로 눈을 가리는 등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다른 곳에서 살아 있다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망신고조차 하지 않고 있는 김양의 유가족에게는 “하루속히 마음의 안정을 찾길 하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 경찰이 경기남부지역 연쇄살인 사건으로 분류한 9건이 아닌 14건의 범죄를 자백한 경위에 대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준 프로파일러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영원히 묻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억울한 누명 쓴 윤(성여)씨와 피해자들에게 사죄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5년째 복역 중인 이춘재는 모범적인 생활로 1급 모범수가 돼 있었지만, 연쇄살인 사건 범인으로 특정되고 자백함에 따라 특별사면이나 가석방의 기회는 사실상 사라졌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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