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한 인하대의과대학 교수

역사를 보면 그 사회가 한 단계 도약을 하게 되는 사건이 있다. 의약품이나 화학물질 관리에서도 산업화 과정을 통해 숱하게 여러 사건을 겪었지만 그를 통해서 안전한 사회를 위한, 그리고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었다.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의약품이나 백신 개발에서는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인 임상3상을 거쳐야 한다.

탈리도마이드는 1953년 독일 제약회사 그루넨탈이 임신부의 구토 억제제 및 수면제로 개발한 약물이다. 1956년부터 세계 각국에 보급되었는데 이를 복용한 임산부에게서 기형아가 출생하고, 5000~6000명이 사망했다. 미국에서는 식품의약품국(FDA)이 이 약의 제조허가를 인가하지 않아 피해를 모면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의학 전문가들의 반면교사가 됐다. 전문가들은 사전에 충분한 안전성 연구 없이 시판되는 신약이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일으킬 수 있는지 깨달았다. 미국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의약품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입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하기 위한 임상시험의 필요성과 피험자의 자발적인 동의와 필요성을 강조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의약품 발매 전의 시험이 한층 강화되었다. 1962년 5월 제약회사 그루넨탈은 탈리도마이드를 자진 출하 정지했으며 9월에 제품 회수와 판매정지 조치했다. 1963년 6월 그루넨탈은 피해자로부터 최초로 제소됐다. 오랫동안 해결을 보지 못하다가 1974년 10월 국가와 제약회사가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끝났다. 엄청나게 많은 기형아와 사망자를 낳은 사건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하기 위한 임상시험의 필요성, 피험자의 자발적인 동의와 필요성이 확립된 것이다.

의약품에서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같은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화학물질 관리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이라고 본다. 정부의 허술한 화학물질 관리와 해당기업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가습기살균제에 많은 시민들이 노출되었고, 1994∼2011년 17년간 독성화학물질에 400여만명이 무방비로 노출되기까지 국가의 어떠한 안전관리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겨울내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어 폐와 여러 신체부위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기까지,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이런 환자가 쌓일 때에야 무슨 환경적인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역학조사가 시작되었다.

가습기살균제가 치명적인 폐손상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독성영향과 건강피해를 밝히는 데 아직도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노출 후 5년이내 천식, 폐렴, 간질성폐렴에 대해 신속 심사를 통해 구제를 하겠다고 밝혔고, 다른 질환도 개별심사를 통해 인정 폭을 넓히겠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개정 했음에도 역학적 상관관계, 엄격한 의학적인 인과관계를 고집하고 있어 피해자들의 피해 인정은 아직 제자리 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릴 때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이후 천식, 폐렴을 앓은 후 호흡기증상은 좋아졌지만 만성피로증후군, 운동장애로 일상활동이 어려운 사례가 많다. 세포 미토콘드리아 손상으로 에너지를 잘못 만들기 때문이다. 한창 젊은 나이인데도 2∼3시간 활동하면 피로해 무기력감에 빠져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을 제대로 못한다. 가습기살균제가 신경발달장애를 유발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진 피해자도 많다.

회복되지 않는 피로감을 가지기에 우울증을 가진 경우도 흔하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근육손상이 진행되어 운동을 잘 못하는 운동장애도 발생한다. 남학생의 경우 군대에 가서 구보 등 집단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귀가조치된 사례가 나오는 등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군입대 문제가 사회문제로 되고 있다.

학교, 직장, 군대에서 적응하고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이제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 한다. 경제성장이 사회 전체의 목표가 되던 시절, 그때의 잘못된 과오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매여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다면 이들을 위한 포용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해당기업도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하고, 국가가 이런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외국에 흩어져 있던 우리 교민들을 위해 특별기를 보내는 국가. 이것이 모두가 찬사를 보내는 국가의 참모습이다. 가습기살균제 문제에도 국가가 소외와 배제 없는 사회를 향해 이런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