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1951년 프랑스로 가셔서 그림 공부를 시작하셨던 어머님(李聖子 화백, 1918~2009)의 나무사랑과 애착은 남다른 것이었다. 경남 진주 일대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시던 때 학교로 오가는 길에서 보고 만질 수 있었던 풀과 꽃들과 나무는 당신의 어린 마음을 사로잡았고 일생 자연과 벗하며 살려는 의욕의 근원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물론 프랑스에서도 어머님은 산과 들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예사로 보지 않으시면서 나무 이름과 특징들을 꿰뚫고 계셨다. ▶1955년부터 시작한 목판화도 나무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나무와의 비밀스러운 감정의 공유로 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머님은 나무의 불변함과 의연함의 특징과 가치를 항상 찬미하는 화가였다. 프랑스로 건너가신 초창기에 직면하셨을 고독감을 삭풍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견뎌내는 나무에게서 동질감을 느끼셨던 것 같다. 어머님은 나무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듯 나무를 새기기 전에 양손으로 어루만지고 나뭇결을 더듬으며 나무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생명에 흠뻑 젖어들고 싶다고도 하셨다. ▶지난 봄철 남동공단에 있는 영림목재의 우드슬랩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프랑스 남쪽 니스 부근에 있는, 생전에 어머님이 회화와 목판화 작업을 하시던 아틀리에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남불 뚜렛트 화실에 가득한 나무들보다도 오래되고 큰 원목들과 함께 건조하여 가공한 나무들이었지만 나무가 주는 독특한 향과 형상은 마찬가지였다. 나무와 더불어 생활하는 밀착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가는 일본에서 우드슬랩을 도입해 10여년간 사업을 준비해온 영림목재에서는 일본과 미국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세계 도처에서 호두나무나 흑단 같은 고급 통원목을 확보하고 있다. ▶우드슬랩은 통원목을 잘라서 제작한 원목판을 토대로 나무의 나이테와 세월의 궤적이 담긴 굴곡 등을 자연 그대로 살려내는 예술품이기도 하다. 1969년 선친이 창업한 영림목재 제2의 도약을 설계하고 있는 이경호 회장은 '나무로'라는 브랜드로 남동공단 전시장에 이어서 서울 강남 학동로(논현동)에 두번째 매장을 개점했다. 자연친화적인 목재가 배제된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강남에서 모처럼 만나는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천의 향토기업으로 적십자 아너스클럽 회원을 거쳐서 대한적십자사 인천 회장을 맡고 있는 이경호 회장은 “나무와 함께해온 지난 50년을 기반으로 향후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서 “백년 동안 자연에서 형성된 나무테와 특유의 색감 그리고 바람의 흔적까지 모든 것을 우드슬랩이 담고 있다”고 말하고 있을 때 목판화를 각인하시는 어머님의 나무사랑이 연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