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 무너지는 일제강점기 노동자의 안식처

태평양전쟁의 산업전사 공급 목적으로 계획된 산곡동 영단주택
국내 유일 한옥 노동자 주택 등 역사적 가치 불구 재개발 못 면해
일본 자본으로 세운 신흥동 … 문화주택촌은 이미 철거 흔적조차 없어
▲ 80여년전 조성된 인천 부평구 산곡동 영단주택이 재개발로 인해 철거를 앞두고 있다. 28일 인천 부평구 산곡동 영단주택 옆으로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2000년대 들어서 재개발 얘기가 나오니까 사람들이 집 팔고 떠나기 시작했어. 지금은 마을이 '전설의 고향'같이 조용해. 직원 월급 줄 형편도 안 돼서 소일거리 삼아 공과금이나 내려고 혼자 지키고 있지.”

지난 21일 인천 부평구 산곡동 '봉다방' 주인 최정숙(84)씨가 비어 있는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최씨가 '백마장'으로 불리는 산곡동 영단주택과 마주 보는 건물에서 다방을 개업한 지는 50년 가까이 됐다. 살림집도 다방 위층이다. 최씨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말도 못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동네에만 다방이 일고여덟 개였다”며 “공수부대원과 공단 사람들, 미군들도 와서 바글바글했다”고 떠올렸다.

봉다방 주인의 회상에는 산곡동 영단주택의 변천사가 그대로 녹아 있다. 내년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이들 주택은 1973년 미군 '애스컴시티'가 해체되고 '캠프마켓'만 남기 전까지는 미군기지 관계자, 이후 부평국가산업단지가 활황일 때는 노동자들의 거주지였다. 영단주택에 60년 넘게 살고 있는 유선녀(94)씨는 “예전에는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세상을 떠난 남편이 미군부대 사무직으로 들어가면서 이사를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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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기서 빠져 있는 역사가 있다. 바로 영단주택이 지어진 일제강점기다. 영단주택에서 영단이라는 표현은 '조선주택영단'에서 비롯됐다. 조선주택영단은 지금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뿌리에 해당된다.

산곡동 영단주택은 1940년대 초반 당시 행정구역상 '백마정'에 경인기업 사택으로 건설됐고, 조선주택영단으로 관리권이 넘어갔다. 구사택과 신사택을 포함해 총 1046호에 이르는 대규모 연립주택 단지였다. 입주자 대부분은 캠프마켓에 위치했던 일본 육군 무기공장 '조병창'에서 일했다. 부평역사박물관이 2014년 발간한 '부평 산곡동 근로자 주택' 보고서는 “백마정 영단주택은 '대동아전쟁'의 산업 전사 공급을 목적으로 계획된 주택단지”라고 기록했다.

철거를 앞둔 산곡동 영단주택이 주목받는 까닭은 기나긴 세월 때문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대규모로 지어진 노동자 주택 가운데 한국인이 한옥으로 설계한 곳은 산곡동뿐이다. 일본인 건축가인 도미이 마사노리 전 한양대 교수는 “서울 문래동 등지에도 일제 주택단지가 남아 있지만, 한국식은 산곡동이 유일하다”며 “당시 조선인 건축가 2명이 조병창에서 일하던 한국 사람 거주 목적으로 만든 한옥단지”라고 말했다.

80여년 전 '신도시'였던 산곡동과 닮은 듯 다른 운명을 안고 있는 동네가 있다. 작명부터 '새롭게 흥하다'는 의미를 품은 중구 신흥동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신흥동 '문화주택촌'은 지난 7월 인천시가 매입한 옛 시장관사와 마을 테두리에 남은 일부 집들을 제외하고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철거됐다. '인천 앞바다 사이다'를 상징하던 현장도 흙더미에 묻혔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사이다 공장으로 전해지던 건물도 인근 주택들과 동시에 허물어졌다”며 “신흥동은 조선 사람들의 땅을 일본인들이 자본을 끌어들여 1930년대 말 본격 조성한 신도시였다”고 말했다.

/이순민·김신영·이창욱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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