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미경 인천여성민우회 대표

이 글은 하나의 에세이일 수도, 성명서일 수도 있다. 낯설 수 있다. 여성들의 낙태도 그렇다. 무수한 여성들이 경험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낙태 이야기는 여전히 낯설다.

법과 정책, 종교와 가족 제도, 지역, 경제적 능력, 나이, 장애 여부나 건강 정도에 따라 낙태는 다르게 경험된다. 그래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낙태 경험을 '말하기' 하면서 낙태죄 폐지운동을 해왔다.

낙태 경험을 말하거나 들을 때 드는 감정은 설움과 분노이다. 설움은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임신이 될 수 있는 몸을 가졌다는 것과 생명을 지웠다는 죄 의식이 복잡하게 얽힌 감정이다.

분노는 임신 상대에 대한 것이다. 성폭력으로 임신된 경우조차도 임신의 책임은 오로지 여성에게 지워지곤 한다.

여성들의 설움과 분노는 이제 그만 중단되어야 한다. 낙태한 여성에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비난이나 통제, 처벌이 아니라 안전한 임신 중단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다.

이는 여성시민에게 마땅히 부여되어야 할 기본권이자 인권이다. 여성이 임신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 자신의 신체 상태를 결정할 기본권을 국가가 침해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낙태죄를 형법에 존치시킨 채 예외적 허용 사유를 신설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것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몰이해이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을 개정할 때까지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입법예고안 소식을 듣고 필리버스터, 집회, 여성선언, 토론회 등을 통해 모여든 여성들이 바람직한 입법 방향을 또 다시 말해주고 있다.

낙태죄 전면 폐지, 안전한 임신 중지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와 정보 제공,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예방할 수 있는 포괄적 성교육이 그것이다.

입법시한이 7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헌법재판소 결정보다 후퇴한 입법예고안을 철회하고 여성의 경험과 외침이 받아들여지는 법과 정책 수립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 성과 재생산권리 확대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