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너머의 영화들] 21. 벨라 타르(Bela Tarr) '토리노의 말'
[시간 너머의 영화들] 21. 벨라 타르(Bela Tarr) '토리노의 말'
  • 인천일보
  • 승인 2020.10.26 16:17
  • 수정 2020.10.27 15:37
  • 2020.10.2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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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
▲ 영화 '토리노의 말' 중 마부가 창밖 너머로 보이는 언덕 위 나무를 바라보는 장면.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1889년 1월3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니체는 마부의 잔혹한 채찍질에도 꿈쩍 않고 버티는 말의 목을 끌어안고 흐느낀다. 그 후 침대에서 이틀을 꼬박 조용히 누워있었던 그는 이 말을 남기고 남은 10년을 긴 침묵의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마지막 말에 대한 수많은 추측과 억측을 불러일으키며…

영화 '토리노의 말'(2011)은 니체에게 맞춰졌던 카메라의 포커스를 옆으로 돌려 말과 마부, 그리고 마부의 딸의 그 이후의 삶을 조명한다. 철학자를 꿈꾸었던 헝가리 거장 벨라 타르 감독은 니체의 사상을 모티브로 하여 마부와 딸이 종말을 향해 파멸해가는 과정을 극도로 절제된 표현과 대사, 단조롭게 반복되는 음악, 긴 호흡의 롱테이크 기법 등 금욕적인 영상미학으로 흑백화면에 담아내어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한 편의 영상시를 창조해내었다.

 

니체의 사상을 통해 전하는 묵시론적 메시지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폭풍을 헤치며 달리는 말과 마부의 모습을 단조롭게 반복되는 선율의 음악과 함께 롱테이크로 담아낸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이어 '첫째 날' 자막과 함께 파멸과 종말을 향해 가는 6일간의 기록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이들 부녀의 6일간의 파멸의 기록은 '창세기'에 나오는 신의 6일간의 천지창조와 대구를 이룬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황량한 불모의 땅 외딴집에 사는 부녀의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의식주 생활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아낸다. 이들에겐 삶의 기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단조로운 일상이 연속된다. 그런데 58년간 들어온 나무좀 갉는 소리가 사라진 다음 날부터 말이 병이 드는 등 조금씩 불길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감독은 니체의 사상을 영화 속에 투영하여 타락으로 치달으며 파멸해가는 인류에게 구원을 위한 최후의 호소를 하며 묵시론적 경고 메시지를 던진다.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미래에 커다란 환란을 불러올 니힐리즘의 재앙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위버멘시(초인)',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등 사상을 내세웠다.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황량한 언덕 위에 홀로 우뚝 서있는 나무는 바로 니체가 제시한 인간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목표인 '위버멘시'를 상징한다. '위버멘시'는 자기 극복과 한계 초월을 통해 삶을 향유하고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 인간'을 말한다. 그러나 영화 속 어떤 인물도 그 나무에 도달하지 못한다. 철학적인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웃 남자는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멀리 보이는 언덕 위 나무를 향해 힘겹게 나아가지만 역부족이다. 그리고 갑자기 말라버린 우물을 보고 짐을 싸들고 떠난 마부와 딸은 나무 근처에서 언덕 너머로 방향을 튼다. 그리곤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온다. 그들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과학과 이성으로 무장한 인간들에 의해 신이 살해되면서 그들이 의지하고 기댈 피안도 함께 사라졌음을… 이제 불마저 꺼져버린 어둠 속에서 마부와 딸은 딱딱한 생감자를 눈앞에 두고 고개를 떨군다. 어떠한 힘도 의지도 상실한 채 무거운 침묵과 함께…

감독은 파괴와 착취와 낭비만 일삼으며 파멸로 치닫고 있는 현대문명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예언만 남기고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곤 니체와 함께 먼 바다를 바라보며 새로운 아침을 기다린다. 하염없이…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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