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된 46동 중 15동은 공공 소유
주택·주차장 등 조성 위해 허물어
일본군 관사 활용하는 서울과 대조
자치단체장 강행땐 막을 방법 없어
▲ 공영주차장과 개발을 기다리는 공터, 임대 수익이 보장되는 다세대주택. 인천일보가 지난 8월부터 두 달간 돌아다닌 근대문화유산 주소지 상당수는 공과 사를 가리지 않은 철거로 과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지난해 10월18일 인천 동구 송현동에서 주민공동이용시설 기공식이 열렸다. '도란도란 송현마을' 도시재생사업으로 2층짜리 마을회관과 북카페를 짓는 공사였다. 행사장에서 허인환 동구청장과 지역 정치인들이 박수를 치며 올라섰던 무대는 8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냈던 조선기계제작소 사택이 무너진 땅 위에 놓였다.

조선기계제작소는 지금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 자리에 1937년 세워졌다. 설립 직후 중일전쟁의 발발로 군수회사로 전환되면서 일본 육군 주문으로 잠수함까지 생산했던 공장이다. 공장 사택은 화수동과 송현동에 지어졌다. 송현동 사택 단지는 도시재생사업 구역과 정확히 겹친다. 일제 침략의 역사를 증명하던 현장은 2018년 동구가 매입하면서 한순간에 먼지가 됐다.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올해 초 동구에선 일제강점기 한반도 병참기지화를 보여주던 도쿄시바우라(도시바) 노동자 주택도 철거됐다”며 “상암동 개발 과정에서 일본군 관사를 '서울미래유산'으로 남겨 교육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서울시와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근대문화유산을 허무는 데는 공과 사가 따로 없었다. 인천일보가 '인천근대문화유산' 210개를 전수조사해 철거 현장을 확인한 46개의 건물 또는 토지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은 결과, 15개(32.6%)는 지자체를 포함한 공공기관 소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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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이 부순 근대문화유산은 9개가 조선기계제작소 사택 사례와 같은 공공시설, 4개가 공영주차장에 자리를 내줬다. 지난 2012년 중구가 공영주차장을 만든다며 철거해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됐던 조일(아사히) 양조장은 '빙산의 일각'이었던 셈이다.

인천시 문화유산과 관계자는 “공공기관 소유 근대건축물은 향후 시 등록문화재로 관리하려고 한다”면서도 “자치단체장 의지로 철거를 강행할 경우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공공과 민간이 철거한 근대건축물 부지 전체로 보면, 현재 다세대주택이 들어선 경우가 가장 많았다. 주상복합건물과 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 공사 현장까지 합치면 모두 12곳(26.1%)에 이른다. 2012년 다세대주택이 신축된 동구 만석동 다카스기 장유양조장 터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 허물어진 부평구 부평동 일본인 식당 건물 부지에도 3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부평동 근대건축물은 1940년대 초반 신축 도면까지 존재하던 상태였다.

근대문화유산이 철거된 뒤에도 공터로 남은 현장은 11곳이다. 이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5곳은 신흥동 지역주택조합 소유다. 인천시가 최근 매입한 옛 시장관사를 둘러싸며 최근까지도 '문화주택'이 모여 있던, 고층 아파트 건설이 예정된 부지다.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는 “조일 양조장 철거 때부터 지역사회에서 대책을 촉구했지만, 시는 뒷짐을 지고 일선 자치구는 문제의식 없이 근대문화유산을 철거해 성과 내기에 바쁜 몰역사적 행정을 반복해왔다”며 “이제부터라도 시가 조사만 하지 말고, 근대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존하는 실질적 방안을 적극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민·김신영·이창욱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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