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최근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밴 플리트 상'을 수상하며 남긴 소감을 놓고 중국에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 상은 한국전쟁에 미군 제8군 사령관으로 참전하고, 전후에는 한•미 간 협력 증진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 단체인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를 창설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임스 밴 플리트(James Van Fleet) 장군을 기리기 위해 1995년에 제정된 상이다.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는 매년 한•미 관계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이나 단체를 선정하여 이 상을 수여하고 있으며, 고(故) 김대중 대통령,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이 수상한 바 있다. 올해는 BTS가 K-POP의 선두주자로서 문화 교류를 통한 한•미관계 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자에 선정되었다.

사실 현재 중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BTS의 발언은 지극히 일반적인 차원의 소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양국이 겪은 희생을 떠올리고 기리는 것으로서, '밴 플리트 상' 제정 취지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기도 하다. 국제적인 무대에서 종종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져왔던 BTS의 행보를 고려하면, 일종의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로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미관계 발전에 대한 공헌을 치하하는 자리에서 한•미 양국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BTS의 발언이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겪은 희생은 외면했다는 점을 문제로 삼고 있다. 물론 그들의 발언 속에 중국의 희생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이 상은 한•미관계의 개선에 대한 공헌을 평가하는 것으로서, 미국의 비영리 단체에서 수여하는 것이다. 그 시상식 자리에서 중국의 희생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BTS에 대한 보이콧이 확산되고 있고, 대기업들은 이들의 눈치를 보며 중국 마케팅에서 BTS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BTS로서는 이보다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지나친 반응을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중국의 반응이 어떠한 맥락에서 나타난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단순히 중국인을 비상식적인 집단이라고 매도하기보다는 그들이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이해할 필요도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해'는 '해석'의 의미이지, '수용'의 의미는 아니다.

먼저 중국은 한국전쟁을 '남의 전쟁'이 아닌 '자신의 전쟁'으로 인식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50년 10월19일, '중국인민지원군'은 북한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압록강을 건너 남하하였다.

그러나 그 전략적 결단의 배후에는 '사회주의 우방에 대한 지원'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연합군과 국군이 압록강을 향하여 신속히 북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동북 방면의 변경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만해협에 제7함대를 배치해 중국의 동남 방면도 위협하고 있었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프랑스가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베트남민주공화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중국은 한국전쟁을 세 가지 방향(한반도•대만해협•베트남)에서 전개되는 '미(美)제국주의'의 중국 침략 전쟁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였다. 당시 중국에서는 이러한 미국의 전략을 '삼로향심우회(三路向心迂回: 세 개의 길로 나누어 중심을 향해 우회하다)' 전략이라고 표현하였다.

요컨대 중국은 한국전쟁을 미국의 중국 침략 전쟁으로 간주함으로써, '남의 전쟁'이 아닌 '자신의 전쟁'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BTS의 발언을 둘러싸고 현재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응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미•중 갈등이 나날이 첨예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 강화와 이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견제에서 비롯된 양국의 갈등은 지난 몇 년간 계속되었고, 지금도 딱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21세기에 들어와 'G2'로의 부상과 함께 중국 사회에서는 민족주의적 자신감이 충만해졌고, 중국공산당은 이를 통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견제로 중국의 민족주의적 정서가 더욱 예민해진 상황에서 BTS가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의 처지가 된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