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희 시인_송도소식지 주민기자

 

가을이다. 코로나로 인해 공장이 멈추고 항공기 운항이 정지된 탓인지 올 가을 하늘은 유달리 청명하다. 어릴 적 보았던 푸른 하늘이다. 새하얀 구름무늬도 선연하고 회화적이다. 어디론가 발길 닿는 대로 마음을 맡기고 떠나보고 싶은 낭만의 계절이다.

가까운 곳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인천문화재자료 제5호, 원인재(源仁齋)다. 조그만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인천지하철을 이용하면 원인재역(연수동) 1번 출구와 인접한 위치에 있다. 입구에는 쌍명재 이인로의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원인재는 이허겸의 묘역 옆에 있다. 이허겸은 고려시대 인예태후(문종의 비) 등 10명의 왕비를 배출한 인천 이씨(인주 이씨) 가문이다. 문종의 장인인 이자연이 이허겸의 할아버지라고 한다. 이허겸의 묘는 연화부수형(連華浮水形)의 명당 터로 꼽히는데 곱게 핀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라고 해석한다. 원인재는 원래 연수동 산지마을에 있었는데 25년 전 택지개발을 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이전 복원하였다고 한다.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과 같은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집이며 원인재라는 명칭은 인천 이씨 각파의 근원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허겸의 조상 중에 신라 경덕왕 때 이찬(신라시대 17관등 중 두번째) 벼슬을 했던 허기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안녹산의 난으로 쫓겨 당나라로 피난 갔던 현종을 무사히 잘 모신 공덕으로 훗날 임금의 성씨인 이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전해진다.

도심 속 고즈넉한 한옥은 단아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한 마당과 작은 연못이 있다. 원인재 강당인 돈인재와 동재인 승휴당, 서재인 율수실 등이 고요히 천년의 숨결을 뿜어낸다. 하얀 회벽과 깊은 빛깔의 나무기둥, 돌을 얹어 둘러친 담장은 포근하기까지 하다. 봉긋하게 솟은 묘역을 감싸주는 노적송은 굵직하게 굽어져 위엄을 더한다.

한가롭게 노니는 가을 햇살이 반긴다. 한때는 부귀영화를 누리며 시대를 풍미했으리라. 버선코로 치켜올린 처마를 바라보며 툇마루에 걸터앉아 본다. 인걸은 간데없건만 만나본 적 없는 선인의 인정이 배어 있는 듯하다. 마음은 고요해진다. 힐링이다. 담장 너머로 배시시 웃으며 기웃거리는 배롱나무 가지가 너울지며 곡선 또한 부드럽다. 그 정취에 잠시 취해 보는 망중한은 여유롭다.

원인재 대로변을 따라 이어진 벚꽃나무 잎이 붉은 빛으로 단풍 물을 적시고 있다. 부드러운 어깨선으로 늘어진 가지들이 아늑하다. 원인재 옆으로는 우거진 나무와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다. 앞에는 남동유수지로 이어지는 물이 흐른다. 연수둘레길을 따라 걷노라면 마른 풀향기와 숲의 밀어도 들려온다. 어느 틈에 가을이 젖어온다.

건물 옆으로 정자를 겸비한 정원도 있다. 푸른 잔디에 전통 조형물들이 장식된 고풍스런 정원이다. 인천 연수구 연수문화원에서는 이곳 원인재에서 치루는 전통혼례식에 참여할 3쌍을 얼마 전 모집공고했다.

연수문화원에서는 2004년에 처음 전통혼례식 행사를 시작했으며, 이번에 응모한 3쌍의 결혼식이 전통혼례 방식으로 오는 31일 토요일 오전 11시 원인재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가을엔 곱게 물든 단풍 아래 만추의 원인재를 거닐어 보면서 선남선녀의 전통혼례식 하객이 되어 보는 일도 의미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