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구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이러다가 교사들 모두 기린 목이 되겠어요.” 추석 연휴 지나 교육부 발표를 기다리던 선생님이 툭 던진 말이다. 코로나 뉴스 동향 따라 학사 일정을 준비하게 되면서 '학수고대'는 교사들의 일상이다. 공문 대신 모니터에 뜨는 기사가 학교를 움직인다. 급기야 '중 1학년 일주일에 3일 등교' 지시가 중학교를 흔들어 놓았다. 여전히 기사가 먼저 뜨고 이를 확인해 주는 문서가 뒤따랐다. 과대 과밀 학교들은 오전•오후반 운영 여부를 두고 이웃 학교 실태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문서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을 교육청에 문의하느라 반나절이 흘러갔다. 질의인지 항의인지 모를 아우성이 빗발치자 오후에 '권장' 두 글자가 추가되었다. 학교가 스스로 판단할 여지가 생기면서 소란도 잦아들었다.

상반기만 하더라도 일사불란은 미덕이었다. 전국의 모든 학교가 동시에 문을 닫고 원격수업으로 전환했을 때, 역경을 딛고 수업을 이어가는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다. '비상', '전쟁', '봉쇄', '준비태세' 같은 전시 용어들이 이 나라 만 개가 넘는 학교를 한 개 유형으로 표준화했다. 특성과 차이를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학교구성원들도 당연히 이해하고 수용했다.

방역 단계가 긴장과 이완을 되풀이하면서 학교 또한 움츠러든 자율을 복구하러 나섰다. 비대면 원격수업이 불러온 학습 격차를 좁히기 위해 등교수업 기준을 완화하자고 요구했다. 여건에 따라 학생들 실정을 살펴 줄 수 있는 '등교 탄력 운영'이 일부분이나마 가능해 졌다.

엄정한 방역 국면에 학교 자율을 안전보다 앞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교육부와 교육청 등교 방침을 수행하면서 학교 적응력도 높아졌다. 처한 조건에 따라 시도교육청이나 학교별로 운용 방식에서 차이가 생겨나기도 한다.

세종교육청은 추석 연휴 이후 모든 학생 등교를 목표로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학교구성원들과 간담회를 열었고 지역사회 지지 여론을 조성했다. 학교유형에 따른 다양한 등교모형을 만들어 현장 적용 가능성을 끌어올렸다. 안전과 등교대면 학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민들을 설득했고 교육부와 협의했다. 이제껏 축적해 온 학교별 대응 역량을 신뢰하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은 '교육자치포럼'에서 교육부와 교육청이 학교 현장을 지원하려면 “자치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보조성의 원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전까지 학교는 '보조성 원리'를 기반삼아 자치역량을 키워왔다. 안전을 제1가치로 지켜내는 데는 '지시'가 효율적이었고 단계별 운영 경험은 학교에 성과로 남았다. 앞으로는 학교 자치역량을 살려가면서 '지원'에 방점을 찍는 방역단계 구획이 필요하다. 300명 학생수, 수도권과 비수도권 기준을 더 세분화해 같은 인천일지라도 지역과 여건에 따라 운영 모형을 다각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난리일수록 승패를 결판 짓는 곳은 현장이다.

이미 '학교 왜 가요?'라면서 원격수업이 더 익숙하다는 학생들이 나타나고 있다. 방역과 일상을 함께 지켜내야 사회가 유지되듯 학교 또한 일상을 재건해야 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자기를 사회와 연결시키기 위해 도움이 되는 언어들을 배우려면' (몸이 가 있는) 학교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격으로 채워 넣을 수 없는 학교의 역할은 상급 관청이 지시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자율이 없는 조직이 '수동공격형' 성원들과 신경전을 벌이다 스러지듯 학교도 위만 쳐다보다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가을 복판에서 농심을 흉내 내는 마음으로 학교의 가을걷이를 염려한다. 하반기를 기점으로 교육부와 교육청을 칭찬하던 여론이 돌아서고 있다.

천수답(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이 태풍을 이겨내지 못하듯 자치역량이 약한 학교로는 장기전을 감당하기 힘겹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지원에 집중하고 학교는 자치역량을 복원하는 새로운 대응태세를 정비할 때다. 신기술도 좋지만 기술 이전에 수맥을 찾으려는 구성원들 의지부터 살려야 한다. 위만 보는 천수답 학교로는 오래 못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