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악중에서도 유구한 맥을 지닌 가곡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손으로 꼽을 정도의 몇 안되는 전수생에 의해 겨우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마냥 안타깝습니다.』

 올해 일흔아홉이라는 나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도상구옹(☎765-1682). 그의 모습 만큼 가곡에 대한 맥잇기 열정은 다름 아닌 청청한 젊음 그 자체다.

 도옹이 가곡과 함께 한 세월은 어느덧 60갑자를 한바퀴나 돈 시간 만큼. 비로소 3년전 인천시로부터 무형문화재 제7호 남창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남창가곡은 전곡 한바탕이 26곡에, 여기서 하나의 곡은 다섯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그 골격이지요. 여기에 전주에 해당하는 다스름과 중간반주인 중여음, 끝난뒤 반주 대여음이라는 풍류를 곁들이게 되면 제대로 한바탕을 부르는데 4시간이나 필요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박자마다 음계가 서너개씩 들어있는데다 음의 높낮음에서도 무려 21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불러야 한다는 것. 그러다보니 배우기가 여간 까다롭지가 않아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전 그만두는 이가 대부분이다. 현재 그에게서 가곡과 시조를 배우러 드나드는 후학은 열명도 채 안되는데다 전수생은 단 네명뿐. 평생동안 가르침을 주고자 했던 도옹의 열정에 비한다면 턱없이 미달되는 수준이다.

곡의 기원은 고려말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정과정선생이 귀향생활중 임금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지은 것이 그 기원으로 양반가에서 불려져 오던 것이 비로소 조선말엽 가곡보라는 것으로 체계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도옹이 처음 가곡을 접한 것은 13세때.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당시 한학을 가르치던 서당선생으로부터 시조를 따라부르던 것이 계기가 돼 20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고, 전국대회에서 1등에 오르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뒤 여수로 옮기면서 선택한 직업은 한약방. 이때에도 그는 멈추지 않는 가곡에 대한 애정으로 약방 한켠에서 가곡과 시조를 배우려는 이들을 맞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형편이 넉넉한 이들은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배워보겠다는 의욕이 가상하기도 해서 열심히 가르쳤지요.』

 인천과 인연을 맺게 된것은 50줄에 들어서면서부터. 당시에도 여전히 한약방을 운영했는데 언제나 그의 주위에는 가곡을 배우려는 문하생이 있었다. 그럴수록 정통 가곡을 지켜야하는 부담감이 커져갔다는 도옹. 그래서 이후 국립국악원으로 찾아가 본인 소리에 대한 수정작업을 자처했다고.

 요즘도 매일 오전시간에는 장구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평생을 해오던 가락이라 짐짓 수월케 들리지만 한 박자속에서도 슬쩍 지나치는 음계는 어디에도 없다.

 『국악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문화재로 지정, 몇몇에 의해 이어가는 것보다는 초등학교때부터 교과 과목으로 채택하는 적극적인 접근이 절대 필요하지요.』 힘주어 말하는 마디마디에 간절한 바람이 묻어난다. kksoo@inch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