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올해 초 인천 서구는 잘못된 행정행위로 인한 한 주민과의 소송전 끝에 최종 패소했다. 시천동의 한 주민이 카페 영업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이 곳은 허가를 내주면 안되는 그린벨트 지역임에도 허가를 잘못 내준 것이다. 서구는 뒤늦게 해당 카페에 원상복구 등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카페 주인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사안이다. 하지만 재판이 대법원으로까지 늘어지면서 그 주민이 긴 세월 겪었을 속앓이와 금전적 부담 등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구청 공무원들이야 고문변호사가 다 알아서 했을 터이니 구경만 했을 것이고. 그 주민의 넋두리가 귀에 오래 남는다. “사과 한 마디 없네요. 더 이상 서구에 살고 싶지 않아요.”

▶서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종로구청은 2016년 평창동의 한 부지에 대해 토지개발행위 허가와 단독주택 건축허가를 순차적으로 내줬다. 그러나 이듬해 느닷없이 직권으로 허가를 취소했다. 이유는 '녹지보존'이었다. 그 이전 서울시의 한 고시에도 '민영주택 건설승인 예정지'로 명시된 땅이었다. 이 역시 대법원까지 가느라 3년이 걸렸다. 재판에 이겼어도 다 해결나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허가를 계속 미루면 달리 다툴 방법이 없는 것 또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현실이라고 한다.

▶올 2월 국민주권감시단(국주단)이라는 시민단체가 출범했다. 내세운 슬로건이 살벌했다. '칼 찬 순사같은 불량 공무원에 국민이 베이는 일 없게 하겠다.' 시작은 강릉의 한 근로감독 현장이다. 근로감독관들이 조사를 나와 사안마다 '구속하겠다'고 하니 겁 먹은 사업주가 협박죄로 고소해 버렸다. 막강한 근로감독관들의 복수전이 시작됐다. 출석요구서를 계속 보내오니 영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이미 퇴직한 사람들까지 찾아내 그 사업장의 법 위반을 파고 들었다고 하니 어디로 빠져나갈 것인가.

▶행정 갑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민간사업자가 인천의 한 섬에 땅을 구해 관광휴양형 개발사업에 착수했다. 군청에 건축신고와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했다가는 곧 거둬들였다. 군청에서 합리적인 토지 이용과 체계적인 개발을 하려면 지구단위계획 방식이 더 낫다며 독려해 줘서다. 이에 사업자는 사업계획을 좀 더 손질한 내용의 지구단위계획을 지난해 5월 군에 제안했다. 그러자 군은 200억원 정도가 드는 선재도∼측도간 1㎞ 짜리 다리 건설을 요구했다. 재정사업을 민간사업자에게 떠넘긴 것이다. 거절하자 군은 스스로 제안했던 지구단위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업자는 5년 동안 질질 끌려 다닌 셈이다. 이런 다툼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군이 건설해야 할 기반시설을 민간사업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며 결정을 취소하라고 의결했다. 동학혁명 이전 시대, 원님과 아전들의 갑질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